203. 노트_ 동쪽여행
KTX 동해선은 묘한 역설을 품고 있다. 동해역은 이름 그대로 바닷가에 있지만, 정작 역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출발 5분 뒤부터 도착 5분 전까지, 기차는 바다를 따라 달린다. 추암, 한섬, 묵호, 망상, 정동진까지, 이름만으로도 정감이 묻어나는 해안 마을들을 스쳐 지나간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동해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학교가 위치한 서울 청량리로 향하는 아침, 나는 처음으로 KTX 특실 1호차에 올랐다. 문화예술경영 전공 대학원 MT에 가는 길. 그간 여러 차례 이 노선을 이용해왔지만, 이번에는 앞칸의 경험이 궁금해졌다. 좌석은 확실히 넓었다. 다리를 펴고 앉아도 불편함이 없었고, 팔걸이 사이 여유도 넉넉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조용하지는 않았다. 기관차와 가까운 만큼 미세한 진동과 앞 유리 쪽에서 느껴지는 기류 소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열차의 진짜 특실은 창밖 풍경이었다. 도시를 벗어나 바다가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해안선이 어느새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추암 해변의 기암절벽과 촛대바위, 묵호항의 포구 풍경, 망상 해수욕장의 고운 모래사장까지. 그 순간만큼은 열차 전체가 특실이 된다.
동해역은 바다를 향한 출발선이다. 역 앞에는 바다가 없지만, 이곳에서 출발하는 KTX는 곧 바다를 보여준다. 그 거리감이 오히려 설렘을 더한다. 열차가 바다를 지나가는 동안, 누군가는 촬영 버튼을 누르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바다를 따라 눈을 감는다.
서울로 향하는 길은 빠르다. 정동진을 지나 대관령을 통과하면 어느새 평야가 펼쳐지고, 도시의 윤곽이 나타난다. 그러나 동해에서 출발한 사람이라면, 도착한 후에도 잠시 그 바다의 감촉을 잊지 못할 것이다.
동해역은 바다와 사람, 그리고 일상의 틈을 연결해주는 문화적 플랫폼이다. 언젠가 누군가의 여행이 이곳에서 시작되기를 바라며, 기자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바다는 멀어졌지만, 그 파란 결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