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노트_ 동쪽여행
“42.08.21 … 이게 뭐냐고요?”
요즘 이 숫자가 제 머릿속에 너무도 또렷하게 새겨졌습니다. 엄마의 생년월일입니다.
최근 며칠 사이, 병원을 두세 군데 다니며 엄마를 모시고 진료실을 드나들었습니다. 접수창구든, 진료실이든, 검사실이든 묻는 말은 늘 같았습니다.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처음엔 당황한 엄마 대신 얼른 대답하곤 했습니다. “42년 8월 21일이요.”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이 숫자가 이제 제 기억 깊숙한 곳에 각인됐습니다. 아이들 돌잔치 날짜도, 제 결혼기념일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는데, 이 숫자만큼은 잊히지 않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왜 병원에서는 그렇게 매번 생년월일을 확인할까요? 이름도 물어보고 주민등록번호도 쓰는데 말이죠.
짐작하기로는, 혹시 모를 동명이인을 구별하고, 환자 안전을 위한 기본 확인절차겠지요. 실수 없이 정확한 진료를 위해선 당연히 필요한 과정일 테니까요.
하지만 제게는 이 숫자 확인이 절차 그 이상이었습니다.
매번 입을 열어 “42년 8월 21일”을 말할 때마다, 엄마의 세월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전쟁을 지나고, 산업화를 견디고, 다섯 자녀를 키우며 살아온 80여 년의 시간들. 병원 대기실에서 잠시 졸고 계신 엄마의 주름진 손을 바라보며, 그 숫자는 어머니 인생의 출발점이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증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어머니랑 내가 이렇게 나란히 병원에 앉을 날이 오는구나.”
어릴 땐 늘 손잡고 병원을 함께 갔던 존재가 엄마였는데, 이젠 제가 엄마의 손을 잡고 진료실 문을 엽니다.
‘생년월일’이라는 질문을 통해,
나는 오늘 또 한 번, 엄마의 시간을 배우고, 제 역할을 돌아봅니다.
기억해야 할 건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에 깃든 삶이니까요.
누님과 착한 동생들의 효도를 기억합니다. 우리 어머니 건강합시다.
그리고 오래오래, 42년 8월 21일을 함께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