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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은 회복이고, 나를 발견하는 길?

18. 동해학아카데미

by 조연섭

29일, 동해문화원에서 열린 2025 동해학 아카데미 네 번째 강의에서 '삶의 오솔길' 주제로 특강에 나선 전상국 작가는 "오솔길을 걷는다는 건, 나를 발견하는 일입니다."라고 했다. 누군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마음속의 길을 따라갔다.


동해학 아카데미는 올해로 5년째, 여전히 작은 강의실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지역학 오솔길' 같은 프로그램이다. 사무국을 책임지고 있는 나로서도 처음 아카데미를 열었을 땐, 과연 지역학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의구심도 있었지만, 매년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강의 속에서, 생각보다 더 많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의, 전상국 소설가

무엇보다 큰 변화는 참여하는 시민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에 관심 있는 몇몇이 찾아왔다면, 이제는 30대 청년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세대와 직업을 불문하고 강의실에 자리를 함께한다. 윤종대(남, 81) 동해역사문화연구회 회장은 강의 소감과 반응에 대해서 "K-문화가 지구촌을 흔드는 지금, 지역학의 가치가 빛나는 순간입니다. "라고 했다. 윤 회장의 그 한마디에 아카데미의 존재 이유가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이번 전 작가의 강의는 특히 인상 깊었다. 그는 "부족하다는 인식이 작가의 출발이었다"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무국장인 나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완벽해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사실. 그것이 오랜 시간 문학과 함께한 작가의 깊이에서 비롯된 말이라 더 진하게 남았다.


작가는 강원도의 자연을 '오솔길'로 비유하며, "강원도에 오면 자연이 된다. 오솔길은 회복이고, 사랑이며,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동해라는 도시가 가진 바다와 산,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하나의 문화이고, 예술이며, 지역학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동해학 아카데미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정체성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안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작은 마을 회의'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간이 앞으로 K-문화의 뿌리가 된다고 믿는다. BTS, 드라마, 한식 등 눈부신 문화의 이면에는 언제나 지역의 결이 숨어 있다. 지역의 언어, 지역의 사람, 지역의 감성이 쌓여 세계로 확장됩니다. 동해학 아카데미가 걸어온 오솔길도, 결국엔 그런 결을 잇는 일이라 생각한다.


시끄러운 홍보도, 거창한 수치도 없지만, 수강생 신혜영(여, 72)씨는 말했다. "이 프로그램이 있어서, 내가 사는 이 동네가 더 좋아졌어요." 그 말 한마디에 5년 동안의 모든 수고가 보답받는 듯했다.

앞으로도 동해문화원은, 작은 오솔길처럼 조용하지만 깊은, 지역학의 가치를 담은 프로그램을 시민들과 함께 걸어가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우리의 삶과 기억, 그곳에 깃든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조연섭_ 동해문화원 사무국장

강의실 풍경, 사진_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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