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추억소환] 음악다방의 유일한 휴일, 현충일?

207. Note_ 동쪽여행

by 조연섭

현충일이다. 과거 유일하게 음악다방과 유흥업소가 모두 쉬던 날이 현충일, 바로 오늘이다. 이날은 대부분 야유회나 모임을 하는 형태로 상호 교류하면서 하루를 보내던 시절이다.


1982년, 내가 처음 음악다방 DJ로 일하던 시절, 그곳은 음악을 틀어주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청춘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지고, 그날그날의 감정을 담은 음악들이 흘러나오던. 그곳은 추억과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의 모든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는 안식처였다. 하지만 매년 6월 6일 현충일만큼은 음악다방과 유흥업소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그날만큼은 누구도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지 않았고, 그 대신 모두가 고요히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현충일은 국가적인 추모의 날로, 한국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의미가 깊다. 그날만큼은 사람들의 일상도 잠시 멈춰졌고, 음악다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대화를 나누며 음악에 몸을 맡겼지만, 이날만큼은 그 모든 것이 침묵으로 변했다. 당시 음악다방은 물론 유흥업소에서도 영업을 중단했고, 그날 하루는 모든 이가 일상에서 벗어나 희생된 이들의 기억을 되새기며 보내야 했다.

조영진(연섭)_ 1982년 포항 예나르 음악다방에서

그것이 단순히 법적인 명령에 따른 것이었는지, 아니면 사람들의 자발적인 추모 의식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당시, 음악이 흐르지 않는 그 고요함은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잠시나마 일상의 소란을 멈추고, 고요하게 마음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음악다방의 DJ로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현충일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우리가 일하는 공간은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곳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사람들에게 추모의 마음을 전하는 장소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 같았고, 음악이 아닌 침묵이 주는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현충일은 나에게 그때 그 시절의 순수하고 경건한 시간을 상기시켜 주는 날이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며, 그때의 고요함과 함께했던 추모의 시간을 되새긴다. 유흥업소와 음악다방, 그때의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 그날의 감동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현충일을 맞이할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고, 다시 한번 그들의 희생에 감사하며, 조용히 머리를 숙이게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묵호가 좋다는 소설가, ‘창작의 시간’ 엿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