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아카이브_ 동해
“화폐는 인간의 삶과 죽음, 영원에 대한 메타포다.”
2일, 평소 친절하기로 소문난 시인이 주관하는 화폐작품전시장을 방문했다. 장소는 도시재생으로 근대산업시설을 문화재생한 묵호 갤러리 ‘바란‘이다. 아쉽게도 전시 마지막날이다. 관람객들은 화폐가 사람을 만나 문화가 되는 과정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김호원 작가가 지난 40년간 수집한 화폐작품전시회다. 이 전시는 동전과 지폐의 물성은 물론 화폐에 깃든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물음을 던진다.
작가가 전시한 작품들은 언뜻 보기에는 평범하다. 한국의 10원짜리, 북한의 독도 조화, 일제강점기의 지폐, 로마시대 주화, 나치 독일의 동전, 포로수용소에서 몰래 빠져나온 토큰들. 그러나 이 작은 동전들이 모여 이루는 거대한 ‘나비의 꿈’을 마주하면, 관람객은 전율한다. 단일한 화폐가 아니라, 인류가 걸어온 문명사 전체가 한 폭의 그림으로 피어난 듯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본드 대신 특별한 접착제를 사용한다. 여름의 습도와 겨울의 건조에 견디게 하기 위해서다. “밑그림이 없는 작업입니다. 동전은 둥글기에 바둑돌을 놓듯 한 점 한 점, 명상하듯 붙여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땀과 숨결이 서려 있었다. 한 작품당 수천 번, 수만 번의 숨을 모아 완성된다는 그의 작업은, 인간이 삶을 한 치 한 치 딛고 가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작품 중 ‘독도 풍랑’은 일본 동전으로 독도의 파도를 형상화했다. “침몰하라.” 그는 짧게 말했다. 그것은 예술이자 저항이자 사회적 문화운동이었다. 정치가 외면하고 외교가 침묵하는 곳에서, 예술은 더욱 웅변적이다.
전시장을 채운 또 하나의 화폐는 ‘나치 동전’과 유일한 ‘포로수용소 전용 토큰’이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잔혹한 도구인 전쟁, 그리고 그 전쟁 속에서도 거래해야 했던 포로들의 눈물. 화폐는 거래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거래를 넘어선 인간 존재의 부끄러움과 슬픔, 그리고 기도의 증거이기도 했다.
관람객들은 질문받는다. “화폐는 무엇을 담는가?”
흥선대원군의 '당백전'은 경복궁 중건이라는 권력의 꿈을 담았지만, 결국 민생을 파탄 냈다. 북한의 독도 조화는 영토를 향한 자부심과 국제정치의 긴장을, 일제강점기의 지폐는 피식민의 수치를, 그리고 로마의 주화는 제국의 영광을 담았다. 그 동전들이 다시 작가 김 작가의 손에서 '나비'가 되고, '독도'가 되고, 링컨의 얼굴이 된다. 그는 화폐의 역사를 인간의 기도로, 저항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번 전시는 화폐라는 작은 금속과 종이 안에 담긴 문명의 흥망, 인간의 탐욕과 실패,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희망을 일깨운다. 그는 전시관 한편에 시집 수백 권을 비치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으니, 여기라도 읽고 가라고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미소 속에서 시인의 절망과 예술가의 의무를 동시에 보았다.
이번 화폐전시는, 인간의 시간과 욕망과 슬픔 위를 스치는 바람 같다. 그것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화폐는 인간의 가장 솔직한 자화상이다.
김호민 작가의 화폐들은 말없이 증언한다.
‘돈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돈을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인간도, 돈도 사라지고
그 위에 예술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