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빛을 내는 동해 사람들?

186. 아카이브_동해

by 조연섭

주말 아침, 행사를 준비하느라 일찍 사무실에 들렀다. 어대노 북 페스타가 개막하는 날이었다. 창밖엔 해무 낀 바다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듯 고요했고, 책상에는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표지가 익숙한 책이다. SNS로 표지 이벤트가 있어 참여한 바 있는 책이며 내가 선택한 색상의 표지였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동해』 채지형 지음.

얼마 전, 묵호의 골목 어귀 새로운 커피숍에서, 북토크 진행자 섭외로 만나 바다를 앞에 두고 나눴던 대화들이 생각났다. ‘언제라도 여행처럼 살아보고 싶은 도시, 동해.’ 나는 조심스레 책을 펼쳤다. 어딘가 익숙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펼치고 목차를 봤다.

1부에서는" ‘동해에서 한 달 살기’에서는 묵호항, 발한삼거리, 바람의 언덕 등 동해의 바다와 골목, 삶의 정취를 담은 장소들을 소개한다. 매일 물회를 먹을 수 있는 행복, 장칼국수의 두 세계, 그리고 산과 바다를 품은 오르막길 등 ‘살아보는 여행’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라는 글이

2부에서는" ‘잔잔하게, 여행책방 한번 해볼까?’에서는 저자가 묵호에 정착하며 차린 작은 책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동해라는 도시를 책과 사람으로 잇는 공간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 그리고 지역과 연결되는 로컬 라이프의 진심을 따뜻하게 그려내는 글이 적혀있다.

3부는 ‘동해에 사는 기쁨’에서는 계절 따라 달라지는 풍경, 책방을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 토요일 북클럽과 바닷가 요가 같은 느긋한 루틴까지 여행과 삶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동해의 모습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4부 ‘동해를 여행하는 10가지 방법’에서는 묵호, 어달, 망상 등 동해의 로컬 명소들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정리했다. 해파랑길 트레킹, 논골담길 산책, 북평민속시장, 동해의 책방들, 인근 도시 강릉과 삼척까지 확장되는 동선까지. 살아본 사람이 제안하는 진짜 동해 여행 코스를 소개했다.


“묵묵히 빛을 내는 동해의 사람들.”

그곳에 깜짝 놀랄 내 이야기도 있었다.

채 작가는 책에서 동해 발한도서관에서 강의를 하던 어느 가을, 한국여행작가협회 허시명 선배가 동해에 왔다며 전화가 왔다고 적었다. 망상에서 만나자는 말을 번복하며 삼화동까지 온 이유는, “그 사람 때문이야”라고 메모하듯이 기록했다. 당시 코로나 시절 삼화에서는 멈춘 100년 양조장을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으로 재생하고 막걸리 마스터 클래스를 운영 중이던 시기였으며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책에는 그런 인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허시명 술평론가가 나를 '소년 같은 문화기획자'라고 했다고 채작 가는 적기도 했다. 강원막걸리학교가 탄생한 이야기, 논골담길 공모사업의 시작, 대한민국직장인밴드 동해콘서트, 전통주를 매개로 사람들을 잇고, 잊힌 이야기를 문화로 되살리는 과정을 작가는 따뜻한 시선으로 적어주었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해야 할 일 같아서 이어온 기획들이 누군가의 눈에 ‘묵묵히 빛낸 시간’으로 보였다는 사실에 나는 한동안 책장을 덮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지금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언제라도 동해, 채지형 지음

누군가의 사적인 기록, 조용한 도시 동해를 다룬 책이 많은 이들의 손에 들려 읽히고 있다는 사실. 그 안에 내 이름이 함께 실려 있다는 것이 왠지 더 믿기지 않았다.
사무실 한구석, 서류 더미 옆에 조용히 놓인 그 책 한 권이, 잠시 잊고 있던 어떤 감정을 다시 불러냈다.


'누군가 봐주고 있었다.'

나는 거창한 꿈을 꾸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동해라는 도시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논골담길에 오래된 마음을 남기고, 어달해변에 바다와 책을 연결하며,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를 놓아주는 일을 계속해왔다.
이제는 그 기록이 나 아닌 누군가의 손으로, 책 속에 담겨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묵묵히 빛낸 사람’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나에게는 과분하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이 도시의 이름 없는 골목을 기꺼이 걷는다.

책에 채지형 작가기 남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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