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아카이브_동해, 산업화의 바람과 함께한 작은 항구의 꿈
산업화의 바람과 함께한 작은 항구의 꿈
동해문화원은 역사문화연구회와 동해학기록센터를 운영 중이다. 역사문화연구회는 매월 노을포럼과 지역학 연구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기록센터에는 지역학 중에서도 고서 중심의 디지털 아카이브가 진행 중에 있다. 두 단체는 송자대전 간행기록, 묵호항의 개항 연도 바로잡기 등 늘 새로운 발견, 자료 등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다.
오늘은 1967년 묵호극장에서 개봉된 영화 용가리 포스터를 공개했다. 우리는 잠시 당시를 소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1960년대, 묵호항은 여전히 바닷바람이 거칠고, 소금기 어린 골목길마다 어부들의 땀내가 배어 있었다. 그 한가운데, 묵호극장은 항구 사람들의 작은 꿈과 설렘이 모이는 곳이었다. 극장 앞에는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어른들은 일과를 마친 뒤 극장 간판을 올려다보며 하루의 피로를 잊곤 했다.
‘용가리’ 상영, 항구를 뒤흔든 대사건
1967년, 한국 최초의 괴수영화 ‘대괴수 용가리’가 묵호극장 스크린에 걸렸을 때, 묵호는 잠시 서울이 되었다. 일본의 ‘고지라’에 맞서 만든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한국 영화사의 상징이자, 당시 한국 사회의 꿈과 불안을 모두 담고 있었다.
포스터의 붉은 ‘용가리’ 글씨처럼, 아이들은 괴수가 나타난다는 상상에 들떠 극장으로 달려갔고, 어른들은 원자력·전쟁·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희망을 스크린에서 읽었다.
묵호극장은 마을 공동체의 심장이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고, 괴수의 등장에 놀라 소리를 지르다가도, 영화가 끝나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 시절 극장은 정보와 오락, 그리고 위로가 공존하는 공간이었죠. 바다와 맞닿은 이 작은 도시에서, 영화 한 편이 주는 위안과 자극은 상상 이상이었다.
용가리의 한국적 상상력은 외래 괴수에 맞서, 한국적 괴수와 영웅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심어주었으며, 원자력, 전쟁, 파괴라는 시대의 불안이 투영되었지만, 결국 인간의 힘과 연대가 괴수를 이긴다는 희망도 담겨 있었다. 또한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 그 집단적 경험이 바로 묵호극장과 같은 공간에서 공동체의 힘으로 더욱 빛났다.
묵호극장의 스크린은 마을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그리고 희망이 투영된 거울이었다.
‘용가리’가 상영되던 그 밤, 묵호항의 바람은 조금 더 뜨겁고, 골목길은 조금 더 설레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라졌을지라도, 묵호극장과 ‘용가리’는 여전히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것이 바로, 영화가 남기는 진짜 흔적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