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맨발걷기_540
글 | 조연섭_문화기획자, 맨발러
새벽 4시 눈을 떳다. 지난밤 새벽에 보낸 카카오톡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가 도착한 시간은 2시 30분 경이다. "잠못 이루다 지금 잠을 청합니다. 동해 맨발 걷기는 다시 도전해 보겠습니다."였다. 대학원, 학부 통합 문화예술경영 전공인의 밤 축제에서 만난 학부생 가수의 문자였다. 평창 지역에서 여름철 고정출연을 위해 임시살이 하며 맨발 걷기에 참여하고 싶다고 새벽 5시 추암 도착을 약속했다. 잠을 돕기 위해 답장은 생략했다. 대신 숙면을 위한 팁을 전하고 싶었다. 오늘은 출근길 맨발 걷기 주제를 숙면과 맨발 걷기로 정하고 추암해변을 향해 달렸다.
540일째, 오늘도 나는 새벽 추암해변을 맨발로 걷는다. 태양보다 먼저 깨어난 바다의 숨결이 발바닥을 적시고, 파도는 마치 한 편의 자장가처럼 리듬을 만들어낸다. 땀이 아닌 이슬이 먼저 배어드는 새벽 공기 속에서 나는 매일같이 나를 정돈하고, 오늘 하루를 견딜 생명력을 충전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여름밤마다 뒤척이는 분이 있을 것이다. 열대야에 몸을 던져봐야 잠은 오지 않고, 에어컨 아래선 마음까지 메마른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그 어떤 처방보다 오래된 이 자연의 방식 맨발로 걷는 바닷가를 추천한다. 맨발 걷기는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깊은 작용을 한다.
땅과 연결 — ‘접지(Grounding)’의 과학
맨발 걷기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현대 생리학은 이를 접지(grounding), 혹은 어싱(earthing)이라 부르며, 실제로 전자기장과 인체 사이 전위차를 중화시켜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고, 자율신경계 균형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본다. 이는 곧, 얕은 수면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자연이 주는 깊고 안정된 잠의 선물로 이어진다.
540일간의 실천 중 특히 여름철에 그 효과는 도드라진다. 낮 동안 뜨겁게 달궈진 도시의 피로를 바닷바람과 해수에 담긴 음이온이 씻어내고, 그 길 위에 맨발을 디딘 순간부터 몸은 자연의 리듬을 되찾는다.
걷는 명상, 수면을 위한 마음 정돈의 시간
걷는다는 것은 발의 움직임만이 아니다. 그것은 복잡하게 얽힌 내면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시간이다. 특히 추암해변처럼 시선이 탁 트이고, 파도소리가 백색소음처럼 마음을 씻어내는 장소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새벽 맨발 걷기에서 오늘의 생각을 비워낸다. 밤이 되면, 놀랍도록 가볍게 잠이 든다. 이 리듬은 하루를 열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심신의 순환 구조를 만든다. 걷기는 몸의 운동인 동시에, 감정과 사고를 정리하는 심리적 환기다.
여름, 해변, 맨발 — 자연 속 잠자리의 회복적 처방
추암해변은 말 그대로 걷기 좋은 길이다.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좌우의 멋진 갯바위, 해조류가 자라는 얕은 갯바위 물길까지, 맨발에 전해지는 자극은 일종의 ‘지각의 풍요’를 만든다.
특히 한여름엔 일출 직전의 맨발 걷기를 추천한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 몸은 아직 외부 열기로부터 자유롭고, 마음은 새벽의 정적 속에서 잉태된 명상 상태에 가깝다. 이때의 걷기는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닌, 하나의 회복의례(Healing Ritual)다.
잠 못 이루는 여름밤, 당신의 해변은 어디입니까
이 글은 단지 ‘걷기’에 대한 권유가 아니다. 자연과 다시 연결되려는 하나의 제안이며, 일상의 불면에 대한 대안적 태도이다. 내가 추암해변에서 찾은 것처럼, 당신에게도 그런 공간이 하나쯤 있기를 바란다. 바다든, 황톳길이든, 작은 마을의 흙길이든.
잠을 구하는 이여, 약 대신 맨발을 신어보라. 가장 오래된 길이 가장 새로운 해답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540일이 전하는 조용한 확신이다.
“아침에 걷는 이는, 밤을 평온하게 누울 수 있다.”
동해 추암해변 맨발 걷기 540일 차를 넘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