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노트_ 만학일기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문화예술경영 전공)에서 마련한 “문화 insight” 8월 특강이 18일 저녁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날 특강 주제는 「시민교육으로서의 낭독극」으로 강의 핵심은 낭독극과 시민교육이다. 특강은 독일, 일본, 미국, 두바이, 서울, 동해 등 에서 총 52명이 참석했다. 강의는 강윤주 주임교수가 독일 현지에서 진행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전문가 인터뷰 등 생생한 독일 낭독극 현장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 이날 특강은 ‘우리가 어떻게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민주주의적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바탕으로, 낭독극을 “시민들이 민주적 대화를 훈련하는 장”으로 설명했다. 대본을 읽고 각자 다르게 해석하며, 무대 위에서 다시 조율해 공동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곧 상호 이해와 합리적 토론의 과정이다. 혐오와 단절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 필요한 훈련장이 바로 낭독극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사례는 이를 뒷받침했다. 카페, 도서관,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낭독 무대는 일반 문학 행사가 아니라 시민사회와 연결되는 대항공론장이었다. 특히 동독 시절에는 검열을 피할 수 있는 예술적 도피처이자 비판적 담론의 장으로 기능했다. 한국 사회의 공공극장이 이처럼 사회적 성찰의 무대로 변모할 수 있는가를 묻는 대목은 의미심장했다.
토론에서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홍기원 교수는 강윤주 교수가 직접 제작하고 출연한 낭독극을 여러 번 관람했다고 했다. 낭독극이 점점 ‘잘하는 연극’이 되는 현상을 지적하며, 예술적 완성도가 오히려 시민교육적 본래 목적을 가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는 책 읽는 문화가 쇠퇴하는 시대에 낭독극이 텍스트를 사회적으로 되살리고, 학생들이 직접 발화하는 교육적 효과를 강조했다.
토론에 답한 강윤주 교수는 먼저 홍기원 교수가 제기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낭독극의 방향을 다시 짚었다. 낭독극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예술적 완성이 아니라 시민적 참여와 민주주의적 훈련에 있다고 분명히 했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자연스럽게 표현력이 향상되고 무대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그것이 곧 낭독극의 목적이 되는 순간 본래의 교육적 의미가 흐려질 수 있음을 인정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잘하는 연극’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다양한 시민이 목소리를 내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장으로서 낭독극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명우 교수가 지적한 ‘책 읽기의 쇠퇴’와 관련해서는, 낭독극이야말로 텍스트를 다시 사회적 장으로 불러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답했다. 단순히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무대 위에서 말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텍스트가 사회적 경험으로 변환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읽기–말하기–토론–공유’라는 민주주의적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종합하자면, 교수의 답변은 낭독극을 예술적 성취와 시민교육 사이의 긴장을 조율하는 매개, 그리고 쇠퇴하는 독서문화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사회적 장치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답변의 핵심은 하나의 방향으로 모인다. 낭독극은 공연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되찾고 민주적 공론장을 회복하는 가장 손쉬운 길이라는 것이다.
이날 강의 중에 제자인 나 역시 질문을 던졌다. “한국 사회에서 낭독극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교수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확장될 것입니다. 연극은 대학로 연극 무대가 증명하듯 공간 시설 등 장소와 공간적 제약이 있지만 낭독극은 어디서든 쉽게 가능하며, 한국 뮤지컬의 폭발적 에너지처럼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가 대중적 힘을 가질 수 있다. 더 나아가, 극단적 정치 성향의 집단들조차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도구로 환영받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 답변은 낭독극이 장르적 실험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천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예고했다. 누구나 무대에 올라 목소리를 내고,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훈련이다. 공연 후 남아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낭독극은 공연 이상의 시민적 숙의의 공론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낭독극은 이제 우리에게 예술적 선택지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다. 어디든 무대가 가능하기에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작은 연습이, 거대한 민주주의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교수님 말씀처럼, 한국 낭독극 그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확장되고 커질 것이다.
낭독극_ 낭독극의 뿌리는 멀리 고대 그리스의 희곡 낭송과 중세 성서 봉독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책을 소리 내어 읽고 함께 나누던 습관은 20세기 독일과 동유럽에서 검열을 피해 사회적 담론을 열어가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낭독극은 무대 장치 없이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생활예술이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만나 민주주의를 연습하는 공론장의 예술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