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만학일기

질적연구, 압박감보다 탐험이라는 설렘으로?

76. 만학일기

by 조연섭

예술경영연구방법론 첫 수업에서 '따뜻한 관점'이라는 나침반을 얻다


'연구방법론'. 전공 필수 과목이라는 의무감보다 논문지도를 받고 있는 나에게는 구세주 같은 강의,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시간 같다. 강의는 열정 짱, 문화예술경영 전공 강윤주 지도교수님이 담당했다. 흥분된 기분으로 첫 강의를 들었다.


강의 첫 화면이 감동이었다. 딱딱한 공식이 아닌,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잠수부의 이미지였다. 교수님은 연구란 ‘미지의 심해를 탐사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때로는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지만, 그 안에서 빛나는 물고기와 해초를 만나는 매력적인 일이라고. 그 순간, '공부'라는 압박감이 '탐험'이라는 설렘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오늘, 나는 예술경영이라는 바다를 탐험하기 위한 첫 번째 장비를 얻었다.

강윤주 교수님 강의영상 캡쳐

나는 연구자를 하얀 가운을 입은 냉철한 과학자의 모습으로 상상해 왔다. 하지만 교수님은 우리에게 ‘브리콜뢰르(Bricoleur)’라는 낯선 이름을 알려주셨다. 이는 문화상대주의를 발전시킨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말한 다층적 해석을 유도하는 문학적 글쓰기라는 개념으로, ‘주어진 도구를 사용해 자기 손으로 무엇이든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연구방법론의 이론적 토대인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 사진_ 4체질연구소 DB

교수님은 딱딱한 견과류를 깨기 위해 돌을 망치처럼 사용하는 침팬지도 예로 드셨다. 침팬지가 망치를 직접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 있는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질적 연구자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의 정해진 길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 관찰, 문헌 등 가용한 모든 재료를 엮어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사람인 것이다. 정답을 찾는 사람이 아닌, 의미를 만드는 사람. 그것이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네 개의 렌즈, 나의 패러다임 찾기


탐험을 떠나기 전, 어떤 렌즈로 세상을 볼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교수님은 이를 ‘패러다임’이라고 부르며, 연구자가 공유하는 믿음과 가치의 묶음이라고 설명하셨다. 어떤 패러다임을 갖느냐에 따라 같은 현상도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교수님은 네 가지 패러다임을 소개하며 우리 각자의 세계관은 어디에 더 가까운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실증주의적 패러다임: 세상에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존재하는, 단 하나의 객관적인 현실이 있다고 믿는다. 연구자는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측정해야 한다.


비판적 패러다임: 우리가 사는 현실은 계급, 성별, 인종 같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불평등하게 만들어졌다고 본다. 연구의 목표는 이러한 모순을 드러내고, 더 평등한 사회를 향한 변화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구성주의적 패러다임: 현실은 하나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진실이란 공동체의 논의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참여 연구 패러다임: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가 함께 지식을 만들어가는 협력적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연구 과정 자체가 참여자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이 네 개의 렌즈를 살펴보며, 나는 예술 현장을 분석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며 의미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나침반은 아마도 구성주의나 참여 연구 패러다임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듯했다.


정답 없는 교실, 함께 지도를 그리는 시간


이번학기 수업도 대학원이라 중간고사도, 기말고사도 없다. 대신 총 7번의 실시간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 각자의 연구를 발표하고, 동료들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교수님은 “사랑을 글로 배울 수 없듯, 연구 방법론은 강의만 듣는 수동적인 행위로 배울 수 없다”라고 하셨다. 직접 부딪히고, 다른 사람의 탐험기를 들으며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업을 마치며, 연구란 차가운 머리가 아닌 따뜻한 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방향을 잃지 않게 도와줄 나침반이 손에 들려 있다.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처럼, 예술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의미 있는 서사로 재구성하는 ‘예술적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 그것이 나의 탐험이 향해야 할 최종 목적지일 것이다. 이제 막막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심해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뎌 본다.

강의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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