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노트_ 맨발걷기
맨발로 해변을 걸은지 565일 되는 아침, 채움과 비움의 상징, 곧 사라질 그믐달이 이쁘다. 나는 다시금 어두 컴컴한 바다와 마주했다. 여름의 마지막 기운이 남아 있는 새벽 공기는 선선했고, 파도에 씻긴 모래는 여전히 따뜻했다. 발끝으로 전해오는 촉감이 오늘 일출의 의미를 먼저 알려주었다.
추암의 일출은 늘 아름답다. 그러나 갯바위와 촛대바위가 함께 빚어내는 장면은 특별하다. 바다 수평선을 뚫고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이 바위를 비출 때, 순간은 자연이 만들어낸 장엄한 그림이 된다. 오늘은 특히 여름의 끝자락이라는 계절감이 더해져, 그 풍경은 환상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565일 동안 추암과 함께 걸으며 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맨발 걷기는 삶을 되돌아보는 사색의 길이 되었다. 갯바위의 단단한 형태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상징했고, 하늘로 치솟은 촛대바위는 인간이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닮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떠오르는 해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말해주었다.
추암의 일출은 우리 사회가 놓쳐서는 안 될 메시지를 품고 있다. 급격한 변화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지키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곧게 서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늘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해를 올리지만, 그 해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는 인간의 몫이다.
끝나가는 여름의 아침, 나는 바다에게서 배운다. 계절은 흘러가도 해는 다시 떠오른다. 중요한 것은 끝을 품격 있게 마무리하고, 그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일이다. 맨발로 걷는 동안 발자국은 바다에 지워지지만, 그 순간의 깨달음은 오래 남는다.
채움과 비움, 그믐달의 지혜로 추암의 일출 앞에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끝은 곧 시작이다.” 그것이 565일간의 맨발 걷기가 내게 알려준 가장 큰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