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암해변 '푸들바위'가 말하는 문화적 기호

206. 아카이브_동해

by 조연섭

바위와 인간, 해변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공존


추암해변은 동해안의 수많은 해변 중에서도 독특한 장소성을 지닌다. 원형에 가까운 해안선, 파도의 방향과 빛의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지형은 ‘자연의 미학’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곳에서 583일째 맨발로 추암해변을 걷는 나의 현장 경험은 해변을 일종의 공공 예술 공간이자 생태적 교실로 전환시킨다.

추암 해변 좌측 갯바위 숲의 푸들바위. 사진_ 조연섭

두어 달 전인가 그렇다, 걷는 과정에서 눈에 들어온 바위는 반복적으로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나는 이 바위를 마치 조선 초기 재생(임금을 돕고 관원을 지휘 감독하는 벼슬) 한명회가 추암을 능파대로 부르라고 했듯이 나도 ‘강아지 바위’라 이름 붙였다. 그 후 SNS에서 탤런트 정은수 씨를 비롯해 다수가 푸들을 닮았다고 부르자 최종 푸들바위로 부르기로 했다. 갈라진 단층 구조가 강아지의 얼굴과 곱실거리는 털결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지질학적으로는 해안 침식과 풍화 작용의 산물이지만, 인간의 인식 속에서는 상징적 존재로 재탄생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장소의 의미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언급한 ‘대지와 세계의 투쟁’ 개념이나, 하버마스의 ‘생활세계(lifeworld)’ 개념을 빌려 설명할 수도 있다. 바위는 그 자체로 자연의 무게와 시간성을 지니지만, 인간은 그 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언어로 호명한다. “푸들 강아지 바위”라는 명명은 과학적 지식이 아닌 일상적 체험에서 비롯되며, 이는 자연이 인간의 삶 속에서 문화적 기호로 변환되는 과정이다.


문화사적 맥락에서 보면,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연물에 얼굴이나 동물의 형상을 투사하며 ‘상징적 교류’를 이어왔다. 고대 암각화에서 동물 형상이 발견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추암해변의 바위 또한 현대적 삶 속에서 ‘현장 예술’ 혹은 ‘자연 속 공공 조형물’처럼 기능한다. 문화와 예술이 결코 인위적인 창작물에만 한정되지 않고, 인간의 해석과 언어화 과정에서 자연과 결합해 확장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가 오는 날 만난 푸들 강아지 바위는 더욱 생생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촉촉이 젖은 표면은 마치 살아 있는 동물의 털결처럼 다가왔다. 자연이 던져준 이 작은 연출은, 걷는 이에게 ‘자연과의 공존’을 다시금 환기한다. 장소가 던지는 상징과 경험은 결국 일상의 지혜로 이어지고, 이는 문화적 자산으로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추암해변 맨발 걷기는 자연과 인간이 상호 해석을 통해 만들어내는 ‘현대적 신화’의 무대라 할 수 있다. 푸들 강아지 바위는 그 무대에서 매일 같은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매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용한 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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