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노을포럼
동해 해변은 어달, 추암, 한섬 등 유난히 시적인 이름이 많다. 그 가운데 ‘망상(望祥)’은 고전과 문학이 교차하는 문화적 지층을 품은 이름이다.
동해문화원 소속 역사문화연구회 9월 노을포럼이 '송강정철의 기억으로 되살리는 동해의 문화유산' 주제로 9일 열렸다.
강사는 황상재 한양대 명예교수가 담당했다. 교수는 강의에서 "망상은 송강 정철의 시와 설화가 살아 있는 장소적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콘텐츠가 부재하다." 라며 "현대적 재해석을 통한 콘텐츠 발굴이 시급하다."라고 했다.
강의에 이어진 토론에서, 고전한문 강사로 활동하는 이장국 전 한중대 교수는 망상이라는 지명의 깊은 뜻을 송강 정철의 시와 함께 풀어냈다.
우리는 흔히 ‘망상’을 바람이 이루어지는 곳, 복을 기원하는 땅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한학자를 겸한 교수의 설명은 달랐다. "망(望)은 한자로 보름달을 뜻하고, 상(祥)은 상서로운 기운, 복스러운 징조를 의미한다." 라며 결국 망상이란 ‘복을 바란다’는 소박한 염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달빛을 우러르며 복스러운 존재를 그리워하는 인간의 정서적 풍경이다.
여기서 송강 정철의 애절한 사연이 겹쳐진다. 그는 한때 사랑했던 여인을 잊지 못해, 달빛 아래 흰 옷(素服)을 입은 그녀의 모습을 '시' 속에 담았다. 이장국 교수는 이를 가리켜 “송강이 사랑한 소복을 잊지 못해 망상에서 남긴 망(望)·상(祥)”이라 정리했다. 지명의 어원이 단순한 기원의 장소가 아니라, 문학적 기억과 인간의 감정사를 품은 상징이라는 해석이었다.
벽운(碧雲), 곧 푸른 구름이 바다 위를 떠돌며 길을 잃은 모습은, 님 소식을 기다리는 그리움의 형상이다. 정철이 남긴 시구가 이 바닷가에서 다시 불려 올려지며, 망상은 자연지명을 넘어 인간 보편의 감정을 담은 장소로 다시 태어난다.
오늘날 망상해변을 찾는 이들이 발 딛는 모래 위에는 단순한 휴양의 풍경만이 놓여 있지 않다. 그 위에는 달과 사랑, 그리움과 복의 서사가 겹겹이 쌓여 있다. 지역의 이름을 문학과 고전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는 일은, 곧 문화적 자산을 되살리는 작업이다. 나아가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에, 이러한 문화적 장소성은 지역이 지닌 기억의 힘을 세계와 공유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노을빛이 번지는 시간에 시작하는 포럼이라 해서 우연하게 필자가 이름 붙인 포럼이며 지난 2021년 시작해 5년째 진행되고 있다. 회원은 물론 시민 모두에게 공개된 포럼으로 매월 9일 1회 동해문화원 청운실에서 개최하고 있다. 문화원 소속 역사문화연구회가 주관한 이번 포럼에서 드러난 망상의 새로운 얼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역의 이름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가. 보름달을 향해 품었던 송강의 그리움이 망상의 해변 위에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복제할 수 없는 ‘문화의 힘‘일 것이다.
<노을포럼 이모저모, 사진_ 조연섭>
1. 위원
2. 전문위원, 위원
3. 윤종대 회장 인사말
4. 단체 사진
5. 황상교 명예교수 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