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만학일기
29일 저녁,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네오르네상스관에서 시작된 현장 논문지도 캠프에 참석했다. 오전 11시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된 이 캠프는 3일간 이어지는 과정이었으나, 나는 일정상 하루 6시간 집중적으로 참여했다. 학교로 향하는 회기로 골목은 문화의 달 10월을 맞아 마을축제를 알리는 현수막과 학생들의 발걸음으로 생동감이 넘쳤다.
문화예술경영 전공인 나는 일정상 첫 지도 대상으로 배정됐고, 열정 가득하기로 정평이 난 강윤주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오랜만에 지도교수님과 원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논문이라는 단단한 벽을 마주하며 각자의 언어로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이날 과정은 총 네 개의 핵심 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지시를 받기보다 준비, 질문, 토론이라는 능동적이고 민주적인 형태로 진행되어 짧은 6시간이었지만 몰입도는 매우 높았다.
첫 지도는 연구의 방향을 정립하는 데 필수적인 과제들로 구성되었다. 나의 논문 주제인 “공공영역 재구성 관점의 지역문화아카이브”를 깊이 있게 다루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주요 영역에 집중했다.
해외 논문 분석을 통한 주요인사이트 도출, 연구 방법론의 핵심인 근거이론 적용 과정과 맥락 조사, 논문의 이론적 토대를 견고히 하기 위한 추가 선행 논문조사 등 3요소다.
이러한 지도 과정을 통해,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세 가지 명확한 연구 방향, 즉 핵심 로드맵을 제시해 주셨다.
1. 근거이론 적용을 위한 하위 범주 및 핵심 범주 설정 방법론 연구에 집중하고, 2. 축 코딩 패러다임 모형에 대한 구체적인 학습을 진행하며, 3. 폭넓은 선행 논문 조사를 통해 이론적 근거의 틀을 더욱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지침이었다. 이 지침들은 우리의 연구가 학술적으로 더욱 깊고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돕는 나침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첫날 캠프 일정을 마치자마자, 나는 학교 연구실을 나와 청량리에서 동해로 출발했다.
한참을 달려 정동진을 지났다. 미디어의 영향 때문인지, 정동진을 지날 때면 버릇처럼 잠시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오늘따라 동해 바다의 색은 유난히 짙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파도는 마치 깊은 사유의 결을 닮아 있었다.
짙은 푸름 속에서 오늘을 돌아보며 문득 하나의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한문교실에서 배운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배우는 일이란,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가는 시간’ 임을 새삼 느꼈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의 고독한 대화이지만, 교수님과 원우들의 질문과 답변은 이 대화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교수님이 던지는 질문 속에는 제자를 향한 배려가, 원우의 발표에는 동료를 향한 존중이 있었다. 그렇게 교단과 강의실, 그리고 대화의 자리마다 ‘교학상장’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정동진 바다색은 유난히 진했던 이유는 아마 그 속에는 나의 부족함, 그리고 함께 배우는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섞여 있었을 것이다. 바다처럼 넓은 배움의 일정 속에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가르침 속에서 배우고, 배움 속에서 성장하자.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의 스승이자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