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행복한 연말, 지역문화 현장에 무슨 일이?

59. 지역N문화

by 조연섭

30년 문화기획 현장에서 확인한 진실, 지역다움은 연대하는 사람들 속에 있다.


매년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올해는 유독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30년 동안 문화기획자로 일하며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이 불거졌다. 공무원 아닌 나에게 공무원 정년을 적용하려는 시도, 협의도 없이 임금을 삭감한 예산안. 그러면서도 자체 규정 개정을 협의 안해서 인정 못하겠다 다는 등 순간순간 ‘내가 헛되이 산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밀려왔다.


그런데 최근 기초의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여야 의원 대부분이 한 목소리로 이 부당함을 지적해 주셨다. 일부 진행 의원과 불참 의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분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특히 한 의원의 마무리 발언이 가슴 깊이 남는다. “이런 사안은 한 개인의 일자리 이어가기 개념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이어온 문제점을 직시하고 민관이 성찰하는 자세로 상호 협의를 통해 풀어가야 합니다. “라고 했다.


또한 대부분의 의원들은 원로들이 제기한 공직자 개인의 문제를 사안에 포함해 민간단체를 억압하는 모습도 옳지 않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말 아름답게 들렸던 어록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헛되이 산 게 아니구나. 대학원 이원재교수(문화연대 집행위원장)께서 강조한 “로컬리티, 지역다움의 가장 큰 힘은 사람“이 소환됐다.


본질을 보는 눈


그분들은 이것이 한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계셨다.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결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관행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당파를 넘어 함께 목소리를 내주셨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힘이다. 제도와 절차를 존중하고, 일방적 결정보다 상호 협의를 중시하며, 개인의 문제를 공동체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 작은 지역 의회에서 그 본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했다.


지역문화는 화려한 프로그램이나 큰 예산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짧지 않은 세월 지역에서 문화기획자로 살아오며 확인한 진실이다. 지역문화의 본질은 그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연대에 있다. 어려울 때 함께 목소리를 내주는 동지들,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이웃들, 본질을 꿰뚫어 보고 용기 있게 발언해 주시는 분들, 그들이 바로 지역다움을 지켜내는 힘이다.


사람이 인프라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지역은 작은 도시다. 하지만 이곳에서 30년을 살며 만난 사람들은 결코 작지 않았다. 문화예술인들, 지역 활동가들, 그리고 이번처럼 뜻을 함께해 주신 의원님들까지. 이들이 있기에 지역문화는 지속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요즘 지역문화 현장에서는 인프라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문화 시설을 짓고, 예산을 늘리고,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을 인프라라고 말한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진짜 인프라는 따로 있다. 서로를 신뢰하고 연대하는 사람들, 그들이 지역문화의 진짜 인프라다. 로컬리티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연대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로 힘을 보태주는 사람들, 회의장에서 부당함을 외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들. 한 개인의 문제를 공동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지역다움의 실체다.


감사한 연말


이번 일을 겪으며 다시 한번 배운다. 지역문화의 힘은 사람이다. 화려한 행사장도, 멋진 시설도 아니다. 본질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 절차와 협의를 존중하는 사람들, 서로를 신뢰하고 연대하는 사람들, 그들이 지역문화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연말이 되면 피곤하다. 한 해 동안 쌓인 일들을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올해 연말은 조금 다르다. 힘들지만 행복하다. 내 곁에 함께 싸워주는 동지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문화기획자로 산다는 것은 때로 외롭고 힘든 일이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많고, 이해받지 못할 때도 많다. 하지만 동지들이 있기에 다시 힘을 낸다. 로컬리티의 가장 큰 힘은 사람이라는 것, 그것을 잊지 않고 새해를 맞이하려 한다.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확신과 함께, 길을 함께 걷는 동지들에 대한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새해에도 이 연대의 끈을 더욱 단단히 이어가리라 다짐한다. 지역다움은 결국 사람 속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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