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펼쳐진 까마귀의 생명 의례

74. 지역N문화

by 조연섭

매일아침 동해 초록봉을 오르는 분이 계시다. 필자가 모시고 있는 오종식(74. 남) 원장이시다. 며칠 전 초록봉 정상인근에서 고라니 사체를 발견하고 “반듯한 바위 위에” 올려놓았고 한다. 사체를 정돈하고 적절한 장소에 안치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류의 보편적 의례다.

초록봉 까마귀, 프롬프트_ 조연섭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까마귀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사체를 먹이로만 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을 매개로 생명의 가장 근원적 행위인 짝짓기 의례를 벌였다.


동물행동학자들은 까마귀가 고도의 인지능력을 가진 종이라고 밝혀왔다. 까마귀는 동료의 죽음 앞에서 집단으로 모여 관찰하고, 때로는 울음소리를 내며 일종의 ‘장례 행동’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날 초록봉의 까마귀들은 죽음 앞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를 선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까마귀들이 “엄청 오래” 짝짓기를 했다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야생동물의 교미는 포식자의 위험 때문에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의 제약 없이 번식 행위를 이어갔다. 왜일까?


죽음이 역설적으로 ‘안전지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포식자들은 썩어가는 사체 주변을 기피하며, 죽음의 냄새는 일종의 경계선 역할을 한다. 까마귀들은 본능적으로 이를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죽음이라는 금기가 오히려 생명 창조의 성역을 형성한 셈이다.


이는 인류 문화에서도 발견되는 패턴이다. 많은 전통사회에서 장례식은 단순히 슬픔의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 결속과 새로운 관계 형성의 장이었다. 한국의 상여소리와 만가(挽歌)에는 죽음의 슬픔과 함께 삶의 지속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다.


아침 초롱봉의 사례는 문화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죽음과 생명은 이분법적 대립 개념이 아니라 순환적 연속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까마귀들에게 죽은 고라니는 먹이이자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제단이었다.


둘째, 야생의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합적인 의미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먹이사슬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상징적·의례적 행동들이 존재한다.


셋째, 인간의 문화적 행위(사체를 정돈함)가 야생 생태계의 행동 패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원장이 고라니를 바위 위에 올린 행위는 까마귀들에게 가시성과 접근성을 동시에 제공했고, 이것이 집단행동의 촉매가 되었다.


강원도 동해 지역의 초록봉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벌어진 이날 현장은 지역문화 연구에도 의미가 있다. 지역문화는 인간의 활동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그 지역의 생태계, 야생동물들의 행동 패턴,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모두 지역문화의 일부다.


백두대간을 여러 차례 완주한 걷기의 달인 원장의 매일 아침 등반은 단순한 개인의 건강 활동이 아니라 산과 인간의 일상적 만남이며, 과정에서 발견되는 야생의 서사들은 지역의 문화적 자산이 된다. 이러한 생태•문화적 사건들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지역문화아카이브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의 하나다.


까마귀들의 만찬은 우리에게 묻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무엇이 가능한가? 애도와 축제는 정말 모순인가?


초록봉의 까마귀들은 답했다. 죽음 앞에서도 생명은 멈추지 않으며, 오히려 죽음이 생명에게 안전한 공간을 선물할 수 있다고. 이것이 야생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생태적 지혜이자, 문화적 성찰의 출발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국악진흥회 대전지부 출범, 초대 지부장 지현아 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