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지역N문화
(사)대한민국농악연합회 임웅수 이사장은 12월 25일 동해에서 진행된 보역새놀이 야학 현장에서 “복지의 시작은 두레문화였다.”라고 했다. 복지를 제도로만 이해하는 순간, 복지는 비용이 된다. 그러나 복지를 관계로 이해하는 순간, 복지는 문화가 된다.라는 말이다. 한국 사회가 오래도록 품어왔던 두레문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오늘의 복지를 다시 묻는 오래된 미래다.
두레는 가난을 구제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아픔을 관리하는 행정도 아니었다. 두레는 함께 살아야 했기에 만들어진 생활의 질서였다. 모내기철, 김매기철, 집을 짓는 날, 상을 치르는 밤까지 두레는 ‘누가 도와줄 것인가’를 묻기 전에 ‘우리는 이미 함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도움은 시혜가 아니라 순환이었고, 노동은 착취가 아니라 신뢰의 교환이었다.
오늘의 복지는 정교하다. 예산은 세분화되고, 대상은 촘촘히 분류된다. 그러나 그만큼 사람은 고립된다. 신청서 속 개인은 시스템 앞에서 홀로 서 있고, 복지는 ‘받는 사람’과 ‘주는 기관’으로 분절된다. 이때 사라진 것은 효율이 아니라 온기다. 제도는 있으나 관계는 없고, 지원은 있으나 공동체는 없다.
두레문화는 이 결핍을 정확히 가리킨다. 두레의 핵심은 상호의존이다. 나의 문제가 곧 공동체의 문제가 되고, 공동체의 노동이 나의 생존을 떠받친다. 여기에는 낙인이 없다. 대신 기억이 있다. “그 집은 우리가 함께 지었다”, “그 논은 우리가 함께 살렸다”는 기억이 공동체의 복지였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구조 변화 앞에서 복지는 더 이상 중앙의 설계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생활 반경 안에서 서로를 알고, 안부를 묻고, 손을 보태는 문화가 복지의 최소 단위가 되어야 한다. 두레는 바로 그 미시적 복지의 원형이다. 마을 밥상, 공동 돌봄, 생활 노동의 나눔, 기록과 기억의 공유까지•••두레는 오늘의 커뮤니티 케어가 미처 설명하지 못한 삶의 언어를 이미 갖고 있었다.
복지를 두레로 되돌리자는 말은 과거로 회귀하자는 뜻이 아니다. 제도를 부정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오히려 제도가 작동하기 위한 토양을 문화에서 찾자는 제안이다. 제도는 지속되려면 신뢰를 필요로 하고, 신뢰는 함께한 시간에서 나온다. 두레는 그 시간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앞으로 복지는 얼마나 많이 지원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함께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예산표가 아니라 관계망으로 설계되는 복지, 통계가 아니라 이야기로 유지되는 복지. 그 출발점에 두레문화가 있다.
복지는 제도 이전에 삶의 태도였고, 공동체의 약속이었다. 우리는 이미 그 해답을 한 번 살아본 적이 있다. 이제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부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