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에러가 먼저인가, 휴먼 에러가 먼저인가

80. 지역N문화

by 조연섭


최근 언론에 '시스템 에러'와 '휴먼 에러'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원인 분석 과정에서 반복되는 용어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경우 이 둘이 함께 거론된다는 것이다. 마치 원인과 결과처럼.

프롬프트_ 조연섭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둘의 인과관계를 거꾸로 본다. 휴먼 에러를 먼저 지적하고, 시스템 에러를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담당자가 실수했다", "확인을 게을리했다"는 식의 결론이 먼저 나온다. 하지만 정확히 봐야 한다. 시스템이 부실하면 휴먼 에러는 필연이다.


과거 조직 생활을 오래 한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종합사업계획서 똑바로 써라", "계약서 한 줄 한 줄 다시 봐라", "규정부터 찾아봐라". 지겹도록 반복되던 이 잔소리가 사실은 시스템의 중요성을 체득한 지혜였다.


종합사업계획서는 무엇을 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시스템이다. 계약서는 약속의 범위와 책임을 정의하는 시스템이다. 규정은 판단 기준과 절차를 정해놓은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 촘촘할수록 개인의 실수가 끼어들 틈이 줄어든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시스템 구축을 '형식'이나 '관료주의'로 치부해 왔다는 점이다.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계획서 작성은 귀찮은 절차, 규정 검토는 업무 지연의 요인쯤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부실한 시스템 위에서 개인의 역량과 판단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사람 탓이 된다. 실수한 개인은 비난받고, 조직은 재발 방지 대책으로 '주의 환기'나 '교육 강화'를 내놓는다. 하지만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스템은 개인의 판단 부담을 줄이고, 실수 가능성을 차단하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다. 과거 어르신들의 잔소리는 이 원리를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실수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이 이 실수를 가능하게 했는가"를. 휴먼 에러를 줄이고 싶다면, 시스템부터 점검하라. 종합사업계획서와 계약서와 규정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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