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힘든가? 한걸음 물러서 대응하라!

221. 노트_ 동쪽여행

by 조연섭

“지금 힘든가? 한걸음 물러서 대응해라.”

이 말은 고(故) 이병철 회장의 실제 경형 담을 남긴 어록 가운데 하나다. 서울에 진출하고 기업대표들이 참석한 첫 회의에서 발생한 기업가 무시발언이 시작이다. 발언 요지는 ‘시골에서 상경한 사업가 자질 저 평가‘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잠시 뒤 그에게 찾아가 ‘모두 나를 칭찬했지만 당신은 나의 단점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신 분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무시 당하면서도 자신을 낮춘 결과다. 결국 이후 그 사업가는 신중한 발언으로 변하게 됐다는 일화다. ‘한걸음 물러서 대응하라 ‘는 격정의 언어가 아니라, 태도 언어에 가깝다.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소란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지금 나는 몹시 어렵다. 삶의 균형이 흔들리고, 조직은 사람보다 절차를 앞세우며, 설명되지 않는 웃지 못할 행정 보복, 갑질 들이 내려온다. 이럴 때 사람은 흔히 목소리를 높이거나, 억울함을 감정으로 증폭시킨다. 그러나 이 회장이 남긴 어록은 정반대 길을 가리킨다. 조용히, 한걸음 물러서 말의 크기를 줄이고, 언어의 밀도를 높이라는 주문이다.


‘조용히’란 물러섬이 아니다. 그것은 중심을 지키는 방식이다. 파도가 높을수록 바다는 바닥에서 더 단단해진다. ‘한걸음 물러서’란 꾸밈없는 언어, 번역되지 않은 진심이다. 외래의 개념이나 과장된 수사 대신, 우리 삶의 문법으로 말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물러서서’는 급히 뱉지 말고, 씹어 삼킨 뒤 내놓으라는 경고다. 말은 무기이기 전에 기록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말은 남는다. 소문은 흩어지지만 문장은 남고, 감정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증거가 된다. 그래서 조용한 대응은 약자의 선택이 아니라, 오래가는 사람의 전략이다. 법과 제도, 조직과 권력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저항은 정확한 언어로 자신의 자리를 증명하는 일이다.


지금의 어려움은 나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시대의 균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즉각적인 승부가 아니라, 시간과 함께 가는 대응이다. 한 줄씩 적어 내려간 문장이 결국 상황을 설명하고, 설명은 판단을 바꾸며, 판단은 역사가 된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한걸음 물러서서, 그러나 끝까지.


이 말은 나의 위로가 아니라 방법이다. 오늘을 견디는 태도이자, 내일을 준비하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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