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노트_ 맨발걷기
20일 화요일 오늘은 대한이다. 한 해의 숨이 가장 낮게 내려앉는 날. 마지막 절기 가장 추운 날이다.
추암이 아닌 어달 해변에서, 나는 751번째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갈매기는 대한을 비웃듯 신나게 춤추고 하늘은 눈발을 풀어 바다 위로 흩뿌렸고, 파도는 겨울의 문법을 잊지 않겠다는 듯 거칠게 몸을 던졌다. 대한다운 날씨, 대한다운 풍경, 그리고 대한다운 걸음이었다.
맨발은 계절을 속이지 않는다. 신발이 지워 버린 온도와 질감을, 발바닥은 다시 불러낸다. 차가움은 통증이 아니라 신호가 되고, 파도의 힘은 위협이 아니라 리듬이 된다. 오늘의 어달은 ‘보여 주는 풍경’이 아니라 ‘겪어야 하는 풍경’이었다.
그러므로 이 걸음은 운동이 아니라 독해에 가깝다. 자연이 써 내려간 문장을 몸으로 읽는 일.
대한의 바다는 말이 없다. 다만 묻는다.
이 추위를 견딜 준비가 되었는가, 시간을 건너갈 각오가 있는가.
맨발로 답하는 순간, 질문은 사라지고 태도만 남는다. 삶은 늘 가장 추운 지점에서 방향을 정한다는 오래된 진실처럼.
751일. 숫자는 기록이지만, 의미는 축적이다. 이 걸음들이 쌓여 한 사람의 리듬이 되고, 계절과 화해하는 법이 된다. 눈발과 파도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안아주고 더 깊이 밀어 넣었다. 바다 안으로 가 아니라, 시간 안으로.
대한에 걷는다는 것은 극복이 아니다. 맞서는 것도, 이겨내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장 차가운 날에 가장 낮은 자세로 서서, 자연과의 동행을 확인하는 일이다.
오늘 어달 해변에서, 발바닥으로 새해의 문장을 다시 써 내려갔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