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노트_ 동쪽여행
유난히 맨발 걷기가 차갑게 느껴진 지난 10일 화요일 아침이었다. 해변의 계절은 늦게 온다는 이야기를 실감한 아침이기도 하다.
오전부터 어실 어실 춥기 시작했다. 35년 단골 미용실에서 시간된다며 명절준비 머리손질 오라는 카톡이다. 머리하고 쉬어야겠다은 생각으로 달렸다. 원장은 멀리 둔 난로를 곁으로 이동해 최고로 높였다. 그래도 온몸은 덜덜덜 떨린다. 참기 힘들 상황이다. 마치고 급하게 집으로 이동했다.
이날 저녁은 초등학생동창들이 특별하게 마련한 나의 은퇴 축하모임이 있기도 한날이다. 회장 친구에게 문자로 상황을 설명하고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 불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오한으로 악몽 같은 하루를 보냈다.
예고가 없었다. 몸이 낯설었고, 이유를 붙이기도 전에 하루가 흘렀다.
저녁이 되자 오한은 더욱 심했고, 밤이 되면서 최악의 시간이 흘렀고 잠은 얕아졌다.
새벽녘, 크게 몇차례 땀을 흘리고 나서야 해
몸은 겨우 스스로를 내려놓았다.
아침눈을 떴을 때, 놀라울 만큼 멀쩡했다.
어제의 기척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몸이 이렇게 태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질문이 되었다.
과로였을까, 스트레스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즘은 몸보다 마음이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구나 맞이하는 직장 관련 정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자주 오갔다.
끝과 시작이 동시에 겹쳐 있는 시기,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정리해야 할 일과 결정해야 할 것들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였지만 몸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제 잠시 멈춰야 한다는 것을.
말로 정리하지 못한 긴장, 길게 이어진 과로와 생각의 무게가 어느 순간 요즘의 몸은 조용히 버텨온 것들을 어느 순간 한꺼번에 내려놓는다.
몸은 가장 솔직한 기록자
나는 AI 에이전트(젠스파크)에게 물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지, 하룻밤 사이에 오한과 발열이 왔다가 아무 일 없듯 사라질 수 있는지.
대답은 단정하지 않았다.
스트레스, 피로, 일시적인 면역 반응, 몸의 자율적인 회복 가능성.
그리고 마지막 문장.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설명이기보다 인정에 가까웠다.
몸이 그렇게 반응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
우리는 늘 원인을 하나로 묶고 싶어 하지만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과로와 스트레스, 계절의 변화, 쌓였다가 흘러간 감정들이 겹쳐질 때 몸은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낸다.
아픔이 아니라, 정리의 시간
그날 밤은 아픈 밤이라기보다 몸이 나를 대신해 정리한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미루지 말라는 신호, 조금은 쉬어가라는 제안.
정년이라는 말이 불러온 긴장, 앞으로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 그 모든 것을 몸은 조용히 안고 있다가 열과 오한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우리는 마음의 문제를 몸으로 치르는 경우가 많다.
몸은 말하지 않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침의 평온은 우연이 아니라 결과일 것이다.
몸이 제 몫을 다하고 다시 균형으로 돌아왔다는 신호.
물론 이런 신호가 반복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밤, 그리고 멀쩡한 오늘이라면 이건 몸이 아직 충분히 견뎌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날은 흔들렸고 오늘은 다시 걷는다.
몸은 나보다 먼저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이제야 그 말을 알아듣는다.
아마 그날의 오한은 아픔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가장 정직한 경고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