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날 걸려온 전화?

2. 논골담길 커먼즈

by 조연섭

오션뷰 1평 사무실, ‘논골담길 커먼즈‘ 창가에 앉아 모닝커피잔을 들었다. 책꽂이 첫 칸에는 소설 《묵호를 아는가?》가 꽂혀 있다. 묵호를 한 잔의 소주 같은 바다로 그려낸 그 문장은, 오늘따라 유난히 짙다.


그때 걸려온 전화.

며칠 전 축하주를 나누었던 선배의 목소리는 뜻밖의 제안을 해오셨다. 언론 문화면을 활용한 작가 플랫폼, 그곳에서 ‘묵호’를 주제로 연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나를 추천했다는 말씀과 함께.


글쟁이 아닌 나에게 있어 주제는 한 곳뿐이다.

논골담길을 포함한 ‘묵호’의 시간과 사람, 그리고 바다.

연재 후에는 출판까지 이어지는 프로젝트다.

근데 제가 자격이 될까요? 질문을 드렸다. 선배는 “현장 묵호와 논골담길 조성 경험이 있어 충분해요”라는 응원에 어쩌다 승낙을 했다.


문득 떠오른 제목이 있다.

〈에세이, 묵호를 아는가〉, 혹은 〈혼자니까 묵호다〉.

혼자이기에 더 깊이 스며드는 항구의 냄새, 제도권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사라질 장터의 목소리들.


나는 지금, 퇴직 2개월 차 문화기획자다.

조직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맞는 첫 설.

기회는 소박한 얼굴로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분명 다음 계절의 씨앗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이번 2막은 다르다.

속도를 내기보다 호흡을 고른다.

성과를 좇기보다 나를 챙긴다.

문화의 순환이 지속되려면, 기획자의 삶도 순환해야 하니까.


오후에는 작당들의 부름으로 북평 장날을 찾았다.

명절 틈에 낀 장터는 한산했다. 하지만 그 한산함 속에 오래된 숨결이 살아 있다.


어르신 몇 분이 명품 25도 소주를 나누고 있었다.

삶으로 담근 술이다.


“새해도 건강하세요.”

아우가 건넨 25도 소주 한 병에, 모두의 아버지가 웃으며 잔을 들었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곳이야말로 24시 문화순환의 심장부다.


문화는 축제 무대 위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장날 오후, 소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오가는 인사 속에서 공동체는 다시 태어난다.


설 대목의 북적임은 지나갔지만, 상인들의 얼굴에는 아직 설이 남아 있었다.

문화는 끝나는 법이 없다. 다만, 농도가 달라질 뿐이다.

논골담길 커먼즈 책꽂이, 사진_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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