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가 넘친다.'오버투어리즘' 앞에 선 이곳이 갈길은?

3. 논골담길 커먼즈

by 조연섭

7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동해시의 항구마을 묵호가 요즘 사람들로 북적인다. 평일에도 골목마다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어달 삼거리, 해랑전망대 앞, 일출 화장실로 유명한 리솔티드 광장과 논골담길 언덕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


바다를 향해 정겹게 열린 골목과 오래된 어촌의 풍경이 SNS를 타고 알려지면서, 묵호는 어느새 '혼자 떠나는 여행의 성지'이자 꼭 가봐야 할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뒤에는 그림자도 짙게 드리우고 있다.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주민의 일상을 밀어내는 관광객의 발걸음


현장에서 마주한 묵호의 주말은 분주했다. 공영 주차장은 오전부터 이미 빈자리를 찾기 힘들고, 어달 삼거리에서 등대마을로 이어지는 내리막길과 리솔티드 앞 해랑전망대 광장 등은 사진을 찍으려는 외지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마을은 작고 골목은 좁은데, 여행자의 발길이 늘어날수록 주민들의 평온했던 일상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최근 관광학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이라 부른다. 관광객이 많아지는 것보다 관광지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뜻한다. 묵호 역시 지금 그 위태로운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카페 리솔티드 2층 논골담길 커먼즈에서 만난 "여기는 안묵호입니다."를 쓴 한재호 소설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이 늘어난 건 좋죠. 그런데 요즘은 퍙일도 동네 골목이 영화 촬영장처럼 변해요. 차는 막히고 소음도 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가 갑자기 낯선 관광지가 되어버린 기분입니다."


원래 묵호는 대형 관광지가 아니었다. 새벽이면 어민들이 거친 바다로 나가고, 낮에는 골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며, 저녁이면 등대 불빛 아래 조용히 하루를 정리하던 평범한 삶의 터전이었다. 그 '일상의 풍경'이 매력적인 상품으로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마을은 준비할 틈도 없이 하나의 '관광지'로 변모해버리고 있다.


'숫자'가 아닌 '머무는 방식'에 집중해야 할 때


평화운동가인 임영신 작가는 지난 2월 동해 잔잔하게 북토크를 통해 "오버투어리즘의 해법을 의외로 단순한 곳에서 찾고 있다. 관광객의 숫자를 억지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여행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묵호의 여행은 대부분 '짧은 방문형'에 머물러 있다. 차를 타고 와서 유명한 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커피 한 잔 마신 뒤 곧장 떠나버리는 방식 이죠. 이런 관광은 지역에 활력을 주기보다 피로감만 남기기 쉽다."라고 했다.

여행자로 넘치는 묵호 여행책방 잔잔하게

그래서 최근 대안으로 떠오르는 개념이 바로 '체류형 관광'과 '관계인구'다. 스쳐 지나가는 뜨내기 손님이 아니라, 지역과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늘리자는 것이다. 자주 찾고, 오래 머물며, 마을의 이야기를 자기 것처럼 아끼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묵호의 미래도 밝아질 수 있다.


묵호가 지속 가능하기 위한 세 가지 제안


오버투어리즘을 슬기롭게 극복한 세계적인 도시들은 공통적으로 '흐름의 분산'을 선택했다. 묵호 역시 다음 세 가지 길을 고민해 볼 시점이다.

• 첫째, 시간의 분산이다. 낮에만 집중되는 인파를 아침 바다와 저녁노을로 나누어야 한다. 야간 문화 프로그램이나 새벽 시장 투어 같은 콘텐츠를 통해 관광의 흐름을 시간대별로 넓혀야 한다.

• 둘째, 공간의 확장이다. 묵호와 논골담길에 쏠린 관심을 어달해변, 대진항, 주변 골목길은 물론, 송정 등 골목길, 쇄운동 효행길 등으로 연계 유도해야 한다. 여행 동선이 넓어지면 주민들의 불편은 줄고 여행자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 셋째, 경험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인생샷' 한 장보다 '인생의 추억과 기억'을 남기는 여행이 필요하다. 작은 책방에서의 독서, 해랑전망대 앞 논골담길 커먼즈 리솔티드 공간에서 골목 콘서트, 마을 주민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 프로그램 등이 그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묵호의 매력은 '속도'가 아니라 '결'에 있다


묵호의 진짜 매력은 화려함에 있지 않다. 느리게 흐르는 바다, 세월을 품은 골목, 바람이 머무는 언덕까지... 이곳의 시간은 도시보다 조금 천천히 흐를 때 비로소 아름답다. 여행자들이 묵호를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느림의 미학' 때문일 것이다.

오션뷰 명소, 묵호 해랑전망대 앞 찻집 ‘리솔티드‘

만약 묵호가 다른 유명 관광지들처럼 방문객 숫자 경쟁에만 매달린다면, 이 작은 마을은 머지않아 지쳐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묵호가 고유의 속도를 지켜내며 주민과 여행자가 공존하는 법을 찾아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제는 '관광의 시대'가 아니라 '여행의 태도'가 중요한 시대다. 묵호는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머무느냐를 말이다.


속도를 늦추고 마을의 시간을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묵호가 넘치지 않으면서도 우리 곁에 오래도록 사랑받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8일 아침, 사진을 찍어도 좋아요? 물어봤는데 손으로 답하는 나홀로 여행자다. 어쩌다 어달로 알려진 해변에서 유튜브 중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_ 조연섭


매거진의 이전글연휴 마지막날 걸려온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