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호 작가의 눈, ‘논골담길 커먼즈’?

4. 논골담길 커먼즈

by 조연섭

3월 8일 휴일 오후였다.

봄이 문턱에 와 있지만 묵호 앞바다는 아직 겨울의 숨결이 남아 있다. 골목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차가웠고, 바다는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너울성 파도로 큰 숨을 쉬고 있었다.


그날 나의 공간이자 동시에 모두의 공간인 ‘논골담길 커먼즈’에 소설가 한재호 작가 부부가 찾아왔다.


한재호 작가는 노동자 수기 공모에서 입상하며 문단에 이름을 올린 작가다.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 사람답게 그의 문장은 늘 사람의 체온이 느껴진다. 2022년 한 작가는 묵호를 배경으로 소설 ”여기가 안묵호입니다. “를 발간하기도 했다.


해랑전망대 앞 리솔티드 찻집 계단을 올라 마지막 턱에 서자 묵호 앞바다가 한눈에 펼쳐졌다.

그 풍경 앞에서 한 작가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바다를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집중인데, 이 공간은 그 집중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곳 같네요.”

공간을 살피는 소설가 한재호, 사진_ 조연섭

창가에 서서 바다와 골목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는 공간을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았다. 작은 사무실이지만 창 하나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는 듯했다.


“작업실이라는 것은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풍경을 품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논골담길 커먼즈 창가 테라스 연인들, 사진_ 조연섭

“여기 창이 참 좋습니다.

창 하나가 글을 부르는 것 같아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생각이 멀리까지 가고, 뒤를 돌아보면 골목의 시간이 느껴집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다시 덧붙였다.


“바다만 있는 곳도 많고, 골목만 있는 곳도 많지만 바다와 골목이 동시에 보이는 작업실은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사람 이야기, 항구 이야기, 그리고 삶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은 길지 않았지만 작가다운 감각이 담겨 있었다.

특히 그는 이 공간의 이름에 관심을 보였다.


“‘커먼즈’라는 이름이 참 좋네요.

누군가의 개인 작업실이라기보다 사람들이 함께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서 웃으며 이런 말도 남겼다.


“앞으로 여기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묵호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도 많이 탄생할 것 같네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공간을 만들면서 막연하게 꿈꾸었던 풍경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사무실 하나에 바다와 골목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모여 생각을 나누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것.


논골담길 커먼즈는 아직 완성된 공간이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완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찾아올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더해지고, 그 이야기가 또 다른 길을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간을 완성하는 시간이 될것이다.


3월 8일 휴일 오후, 묵호 앞바다를 바라보며 한 작가가 남긴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곳은 작업실이라기보다

생각이 자라는 공간 같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이 공간의 의미를 생각했다.


논골담길 커먼즈.

나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모두의 공간.


그리고 언젠가 한재호 소설가의 손으로...

이 창가에서 또 다른 문장이 태어날 것이라는 조용한 예감이 들었다.

소설가 한재호 소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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