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28. 기획자가 답하다. 묵호 논골담길
끝까지 도망치고 싶을 땐, 묵호!
화려함보다는 소박함과 정겨움이 넘치는 곳, 작고 가파른 골목길 구석구석에서 동해 묵호항을 배경으로 살아온 주민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묵호 '논골담길'
사람들은 봄은 산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묵호의 봄은 시린 손 호호 불며 겨울바다에서 삶을 그물질하는 어부의 굳센 팔뚝으로부터, 첫새벽 어판장에서 언 손 소주에 담아 가며 펄떡이는 생선의 배를 가르는 내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언덕배기 덕장에서 찬바람 온몸으로 맞이하는 북어들의 하늘 향한 힘찬 아우성으로부터 온다.
끝까지 도망치고 싶을 땐 묵호로!
끝까지 도망치고 싶을 땐 묵호로 간다. 서쪽 끝에선 갯벌이 발목을 잡고, 남쪽 끝은 섬이 많아 갇힐 것만 같다. 북쪽은 끝까지 갈 수 없기에 지도 펼쳐 '서울' 적힌 곳에서 자 대고 동쪽으로 줄 그었다. 항구 하나가 나온다. 묵호항!
그들에게 있어서 바다란 평생을 싸워야 할 강한 적이기도 했지만, 또한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이기도 했다.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둘러 독한 술로 몸을 적시고, 방파제 끝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토악질을 하고,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심상대 소설, ’ 묵호를 아는가 ‘ 중에서
가파르지만 전망은 7성급 호텔
논골담길은 비좁고 가파르다. 시멘트 바닥은 굴 껍데기처럼 거칠다. 대문 없는 슬레이트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문은 없어도 마당에 오징어와 명태를 말리는 건조대 하나쯤은 두고 산다. 창호지를 바른 나무 창살문을 그대로 사용하는 집도 있다. 이 문을 열면 바로 바다와 마주한다. 묵호등대마을의 집들은 허름해도 전망만큼은 7성급 호텔 뒤지지 않는다.
홍콩의 야경보다 아름답다. 묵호!
소설가 심상대 씨의 데뷔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문득 무언가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면, 그들은 이 도시를 기억해 냈다. 바다가 그리워지거나, 흠씬 술에 젖고 싶어 지거나, 엉엉 울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허둥지둥 이 술과 바람의 도시를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지금 마음이 엉엉 울고 있다. 그래서 허둥지둥 묵호로 내 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다. 묵호……. 그곳을 향해 달린 지 얼마나 되었던가. 환한 대낮을 달려왔건만 어느새 해가 져버렸다. 그래도 묵호 등대에 올라 본다. 등대 불빛 한 조각이 간절하다.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어 묵호라고 했던가. 시퍼런 바다를 그리며 왔건만 바다는 칠흑보다 검은 멍울이 되어 발아래 흔들린다. 검은 하늘이 있어야 별이 빛난다 했던가. 영롱한 묵호항의 불빛이 아롱거리고 바다 끝자락쯤에 어화가 떠있다. ‘밤이면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묵호의 바다는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하다’ 했던 소설가의 그 바다만큼은 아닐지라도 지금 이 순간, 묵호의 밤바다는 백만 불짜리 홍콩의 야경보다 아름답다.
• 사진_ 임황락 작가
• 글_ 심상대 소설 ‘묵호를 아는가’ 중에서
Q. 묵호의 밤이 보고 싶어요
이옥주_ 경영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