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26. 기획자가 답하다. 묵호 논골담길
논골담길의 다른 이름, 묵호등대!
묵호 논골담길 매력 중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면 도시재생의 핵심, 장소적 배경이다. 1937년 개항한 ‘묵호항’과 1963년 건립된 ‘묵호등대’가 ‘마을 주민의 삶’과 ‘생활문화’가 만나면서 논골담길은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됐다. 그 중심에 논골담길의 다른 이름이라 불러도 좋을 ‘묵호등대’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얼어붙은-달그림자-물결 위에-자고’로 시작하는 동요 ‘등대지기’를 불러본 적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잠들지 않는 아이를 달래는 자장가로, 때로는 여름밤 모닥불 앞에서 모두 함께 불렀던 동요 제목인 ‘등대지기’는 사실 정식 용어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외로운 섬을 지키는’ 등대의 본모습은 밤바다에서 선박의 안전 항해를 돕는 관공서이며, 등대지기의 정식 이름은 국가공무원인 ‘항로표지원’이다.
등대를 낭만과 고독의 상징이라 여기는 서정적 시각도 있겠지만, 실제로 등대는 근대 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서구세력이 식민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수많은 배를 띄웠고 이들의 안전운항을 지킨 것이 바로 등대였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형태의 등대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일제 강점기 즈음이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동북아 진출에 박차를 가했고, 우리에게 등대 설치를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일본은 규슈, 대만, 만주 등 한중일 배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인천항에서 군수물자를 원활하게 운송하고자 한 것이다. 1903년 6월 1일 마침내 인천항에서 15.7km 떨어진 팔미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7.9m 높이의 팔미도 등대가 설치되었다.
팔미도 등대는 그로부터 약 50여 년이 지난 후 큰 의미를 보여주었다. 최근 한참 뜨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극적으로 묘사된 것처럼 1950년 9월 15일 자정이 지난 시각, 연합군의 상륙작전 개시를 뜻하는 불빛이 바로 팔미도 등대로부터 밝혀졌다. 당시 수세에 몰리고 있던 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후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
등대는 이처럼 여러 가지 숨은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으나, 보통의 시각은 여전히 등대를 일상에서 벗어나 꿈과 희망, 편안함을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항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위성장치, 레이더, 전자해도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항해장비를 중심으로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지만, 이분들은 여전히 바다 위 등대를 보면서 평안함과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등대가 요즘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즐기는 해양문화 예술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지금, 가만히 당신 마음속을 들여다보세요. 그 속에는 당신이 떠나고 싶은 여행지가 있을 거예요. 혹여, 가슴속에 도망치듯 떠나온 곳이 있다면,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아닌지요?
세상에 많은 여행자 중 당신이 우연히 이 글을 발견하게 된다면, 언제나 만나고 떠남이 있는 길 중에, 여기저기 기웃대던 어린 시절 좁은 골목길을 그리고 있다면, 빛과 생명이 가득한 언덕길을 걸으면서 탁 트인 동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오늘은 떠돌이 여행자의 마음으로 동해시 북쪽에 자리 잡은 마을, 묵호 논골담길로 새로운 희망 찾기 떠나보아요! “
글_ 논골담길 벽화
‘묵호등대’는 항해하는 선박들의 안전운항을 위해 ‘묵호항’ 근처에 1963년 6월 8일 건립되었다.
이후, 동해시가 남과 북,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거점 도시로 발전하면서, 2007년 12월 높이 21.9m 높이로 새로이 건설되었으며 2014년 7월 등대 기능 강화를 위해 4m를 높여, 지금의 등탑 높이 25.9m, 해발 높이 93m의 위용을 자랑한다.
3층 구조의 내부 나선형 계단으로 전망대에 오르면 묵호항 인근 360도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데 동해, 두타산, 청옥산 등 백두대간 봉우리, 그리고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시가지를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묵호등대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높고 ‘찬란한 유산’(이승기, 한효주), ‘상속자들’(이민호, 박신혜)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인근 논골담길은 이 지역 옛 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관광지로 벽화와 조형물을 통해 지역의 삶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엿볼 수 있어 여행자들의 볼거리를 한층 풍요롭게 한다.
또한, ‘묵호등대’에서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색상을 연출하는 LED 조명등을 설치하여 야간에 아름다운 빛을 연출하고 있다. ‘묵호등대’는 봄이면 개나리가 화사하게 피어 관광객을 맞이해 주고 있으며 자연과 어우러진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묵호등대 종점슈퍼 주인 손만택(남. 85세 ) 어르신에 따르면, ‘1962년 짓기 시작해 1년을 주민 대다수가 매달려 남자는 지게로, 여자들은 대야로 모래, 자갈, 시멘트를 담아 날라 등대를 준공했다. “라고 한다. 꽁치잡이 철이 끝난 시점이라 일이 없는 상황에 등대 만드는 일은 또 다른 일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수고비로 남자는 온 표, 여자는 반표를 받았고, 온 표 하나는 보리쌀이나 밀가루 한 되로 바꿔줘 꽤나 좋은 아르바이트였다고 기억하신다. 그 후 40여 년 동안 길을 밝혀주던 등대는 2006년 3월 시설의 노후로 재건축을 해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다시 태어났다고 회상한다.
묵호등대 광장은 2010년 논골담길이 조성되고 등대 명소화 사업이 추진되면서 논골담길을 만든 동해문화원과 동해시, 동해지방해양수산청, 각 문화예술단체가 나서 다양한 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매년 다양한 장르로 마련하는 묵호등대음악회, 강원도청소년댄스경연대회, 위크앤드 페스티벌, 묵호이야기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공연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묵호등대가 공연명소로 자리를 잡은 배경에는 화려한 무대 백드롭이 되어준 탁 트인 동해바다 몫이 크다.
묵호등대
“묵호 등대의 밤은
바다 위를 비추는 달빛에
조용한 파도 소리가 어우러지며
바람과 함께 춤을 춘다.
밤하늘에 흩어진 별들은
묵호의 불빛과 함께 춤추며
어디서든지 바다와 등대를 바라볼 수 있게
이 세상을 빛내고 있다.
묵호 등대여 너의 불빛은
어둠을 밝혀주는 나의 안전줄이야
어디를 가든 나는 네가 있어
내 안전을 지켜주는 네 불빛을 따라가고 있어. “
글_ 논골담길 이야기 중에서
묵호등대의 원형으로 수십 년 뱃길 신호등 역을 해온 등대 상단 모습이다. 2006년 시설 재건축 당시 알 수 없는 연유로 외부로 유출됐다가 마을주민 김진형 씨의 노력으로 현재 등대오름길 정상에 나란히 놓여 동해를 향하고 있다.
세계 최초 등대, 파로스 섬 ‘파로스 등대’
세계 최초 등대는 기원전 28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 입구 ’파로스 섬‘에 세워진 ‘파로스 등대‘(Pharos lighthouse)로 알려지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함께 고대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 하나로 거대한 탑과 빛나는 횃불이 알렉산드리아 해상무역에 번영을 가져왔다. 이후 1,600년 동안 뱃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었던 파로스등대는 3번의 지진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2세기경 건설된 스페인 라코루냐(La Coruna) 등대가 지금까지 남아 고대 등대의 원형을 유추하게 해 준다.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등대는 그 높이가 135미터에 달하고 등대 안에는 수백 개의 석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로스 등대에서 밝히는 빛은 반사경을 타고 50킬로미터 밖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글_ 등대박물관 등대역사 중에서 ..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묵호등대‘는 넉넉했던 삶이 지나고 고단한 삶을 이기려 하지 않고 ’ 지고 ‘ 이겨낸 마을 사람들과 ‘동해’를 마주하고 ‘논골담길 뱃길’을 밝히고 있다.
Q. 김병희_ WDV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