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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Feb 27. 2024

[구술사] '영동선 위의 사람들' 발간!

8. 매거진_ News

구술사 자료집, 영동선 위의 사람들 발간!
영동선 개통식, 사진_강원일보•한국민족문화대백과DB

산업철도로 '삼척철도'라는 이름으로 개통된 ‘영동선’ 근로자들의 경험과 삶을 기록한 구술 자료집 '영동선 위의 사람들'이 지난 21일 발간됐다. 동해문화원이 지난 202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근대산업도시 구술사‘ 시리즈 세 번째 사업으로 코레일 영동선관련 기업과 근로자 중심으로 조사한 구술사다. 구술진행은 서울대학교 심일종 박사팀이 담당했다. 지난해 연말까지 조사를 마치고 활용사업의 하나로 교정, 윤문 과정 후 발간 배포하게 됐다.

표지 디자인, 사진_조연섭
목차, 사진_조연섭

영동선은 '산업철도'로 "삼척철도"라는 이름으로 1941년 8월에 개통됐다. 당시 묵호~도계를 연결하는 41.4Km 길이의 구 간은 "삼척철도주식회사" 소유의 사철이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는 중요한 원료 공급지로 인식되었는데, 석탄·철광석·마그네사이트 등 각종 지하자원이나 목재가 그러한 품목에 해당되었다. 특히 북부지역과 동해안을 따라 풍부하게 매장된 이들 자원을 인근의 주요 도시 및 항구까지 운송하기 위해 산업철도를 건설했다.

일제강점기 남한지역에서 흔치 않았던 산업철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철도청, 한국철도 코레일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동안의 철로 위에서 생생하게 체험한 현장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동선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또 다른 모습인 원료 즉 석탄•철광석·시멘트 등의 물 류를 실어 나르는 철도에 관한 이야기다.

이번 구술생애사는 18명의 구술자가 참여했다. 구술자료집 인터뷰 내용은 연장자 순으로 배열했지만,  2막과 3막 그리고 4막은 직렬에 따라 배치하는 관계로 특정한 순서를 고려하지 않았다. 참가 구술자는 최준달, 홍효식, 김진태, 민성기, 김진강, 김복기, 방상근, 이강영, 김정래, 홍연자, 신승수, 이연동, 박상훈, 김병영, 김종석, 정재중,  박재권 등 영동선 철도 근로자들로 구성했다. 단, 신필녀 구술자는 영동선에서 근무한 근로자는 아니다. 그러나 처음에 인터뷰 과정에서 열차를 타고 야채를 팔러 다니던 승객의 입장도 담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채록한 경우다.

본 구술자료 수집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또 다른 모습인 석탄, 시멘트, 잡화 등 물류를 나르기 위해 건설된 ‘영동선(嶺東線)’에 관한 보고를 목적으로 한다. 강원도 태백시 철암과 동해시 묵호를 잇는 제1기 영동선은 그야말로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0년대 영동선, 즉 철암선은 묵호의 물산을 영동의 내륙지역으로 나르면서 마차, 도계, 통리, 철암 등 석탄과 석회석 등 광업을 돕는 등대였다. 그리고 삼척선(삼척∼북평 간)은 1944년 2월, 동해북부선(묵호∼강릉 간)은 1963년 10월 개통됐다. 이처럼 동해북부선·철암선(鐵巖線)·영암선(榮巖線)·삼척선(三陟線) 등으로 분리되어 있던 노선을 1963년 5월에 이들 철도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영동선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총연장은 193.6km이다.

영암선(영주~철암)은 해방 후 대한민국 산업의 부흥을 위해 최초로 계획 도입됐다. 영암선이 개통되기 전 태백산맥에서 채굴된 지하자원 수송은 순전히 해로(海路)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영암선을 이용하여 지역으로 사람을 끌어들여 산업의 본격적인 개발은 물론, 지역물자를 육로로 수송하는 길은 영암선 개통으로 어느 정도 해결됐다. 이 철도가 영동선으로 통합된 이후에도 태백산맥을 횡단하여 묵호(墨湖)에 이르는 산업철도로서 그간의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본 구술자료 수집은 바로 이 영동선에 얽힌 이야기와 사건사고를 지역의 일상사로서 수집하려 했다.

일제강점기 이래 근대성의 궤도에는 자본주의 근대성과 여행하는 근대성이 양립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과학적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이동(mobility)이라고 하는 동력이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제국의 기계에 올라탄 탈식민지 국가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그 새로운 국가의 농촌과 도시의 주체성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는 고민이 깊다. 그러나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차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영동선의 일상사로 기억할 것은 기차의 로맨스와 기차 위의 위험을 달고 계속해서 이동하는 근대성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영동선은 강릉 KTX의 존재로 인하여 다른 궤적의 운동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 가치가 잊히기 전에 기차를 탔던, 기차를 운행했던 사람들들의 증언을 이 영동선을 옮겨놓고 싶었다. 이것이 ‘영동선 위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자료가 수집됐다.  

구술자, 최준달 구술사_ 요약 편
제목: 1960년대 철도 직원들의 직역과 명칭


철도에서 직원을 모집한다 이러면 시험을 보고 합격해 가지고 가보면 정거장 계통에 가는 사람은 역수, '구내수'지. 역수는 차표 받고 또 오래되면 역사 내에서 통계 사무를 보고, 구내에서 화차 위판하는 걸 조성하고 연결하고 하는데 기(10)를 흔들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구내수라고 하지. 조역은 정거장에서 일정한 연한을 구내원으로 근무 한 사람을 말하는데, 처음에는 구내수로 쓰이고 그다음에 이제 몇 년 지나면 구내원이 되지. 구내에 신호하는 사람들도 구내수지. 또 차표를 받는 사람은 역수인데 그것도 몇 년 지나면 역무원이 돼요.

역무원이 되면 역사 안에서 사무를 보고 그래요. 내가 잘은 모르겠 는데, 일정연한이 되면 채용 시 험으로 봐요. 채용 시험 봐가지고 합격하면 '차장'이 되는 기고 떨어지면 그 하던 일 또 하 는 기고 그래서 일정 연한이 되면 조역 시험을 봐. 조역 시험을 봐가지고 역조역'이 되지. 역조역은 빨간 테가 있는 모자를 쓰고 그리고 상간[상당 한] 연한이 지나면은 철도전체를 하니까 순위를 보고, 근무 성적이라는 걸 반영해서 '역장'으 로도 승진해요. 역장이라고 해 봤자 '주사'야, 주사인데 북평역에 서기관이 있지, 주사는 6급이야. 4급이 서기관, 사무관이 5급이 가장 좋아. •

기관차 사무소 계통은 직매 위판을 들어가니까 '고내수', 창고 차고를 차고 안에서만 일하는 사람을 고내수라고 해요. 일정 연한이 돼면 시험 봐서 합격하게 되 면은 '기관조사'가 되지. 거기서 또 일정 연한이 지나서 시험 봐가지고, ‘기관사 견습'이 돼요. 기관사 수습으로 한 6개월 지내 가지고 기관사, 기관사가 대단하지. 또 검사원이 라고 있어요. 검사원은 기관차가 들어오면 전동망치로 두드려요. 두드려서 어디 고장이 났는지 보고 다니는 거죠.

검사원이라고 하고 준비원'은 고내수를 기르고, 기관차를 청소하고 이제 유화 기관차를 운행하는 기관차를 수리하고, 무화기관차 물이 없으니까 안 해도 되지요. 근데 유화 기관차의 모든 정비를 담당하는 게 고내수라 그러지요, 그래 서 검사원이 준비를 해가지고 수리하면, 인제[이제] 정비 분야로 돌려주면 그 사람들이 와서 수리해요. 준비원은 고내수를 데리고, 기관사의 모든 정비를 담당해. 준비원은 기관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 발령에 따라 가지고 검사 발령 나면 검사하러 가고, 준비 발령 나면 준비를 하지요. 검사원과 준비원은 동급이고 거기에 기술 사무를 보는 사람을 ‘기술원'이라고 해. 기술원은 기관차의 모든 서류를 해가지고 보고를 하는 사람들이지.

또 그다음에 기관사를 하다가 검사원, 준비원, 기술원으로 풀리고 나면 거기에 또 '지도 기관사'가 있어요. 이 사람은 차는 안타고 기관차 승무원의 교양 또 규율 등을 담당을 하는 지도원을 말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기관차 승무원의 헌병이랑 한 가지야. 그리고 운전자는 아까 얘기했다시피 원직에 있는 사람들이 시험에서 합격하면 '조역'이 돼요. 그다음에 또 지도조역이라는 게 있어요. '지도조역'은 운전 조역의 고참이 지도조역인데 그게 말하자면 '부소장'이랑 한 가지야. 기관차 승무원들이 북평역에 많을 때는 한 200명이 있었거든, 기관사 100명, 기관조사 100명. 디젤 기관사는 기관조 한 개 조로 있으니까 한 200명 되었지. 그래서 이들 기관사와 기관 조사들의 근무 상황을 보고해 가지고 그 사람들이 보고에 의해서 승진도 하고, 부소장도 되는 거예요.

영동선 위의 사람들, 구술 의미와 가치!

영동선 위의 사람들은 한국의 역사이자 지역사의 역사이고 모두의 역사다. 따라서 철도청, 철도공사인 코레일 영동선 근로자를 찾아 스스로 경험한 삶을 스스로 목소리로 담는 일은 매우 귀중하다고 여겨진다. 이 작업의 의미와 가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영동선의 체험적 구술은 이 지역이 철도를 둘러싸고 어떠한 발전경로를 걸어왔는지를 지역사적으로 증언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본작업은 그런 근대성 궤도의 상관성과 연결성을 분명히 기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 궤도는 근대의 식민지에서 탈식민지화 하면서 바뀌지 않았지만, 무엇을 싣고 날랐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줄 것이라고 본다.   

  

둘째, 본 구술자료 작업은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영동선을 이용한 지역사람들 역사를 담는 그릇이 될 것이다. 근로자가 철로를 따라 더 먼 곳까지 가서 직장을 잡고,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또 먼 곳에 계신 부모를 봉양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그 길은 실존적 인간의 삶을 구축하고 개인과 가족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주요 세계가 되어주었던 곳이다. 그래서 이들 목소리는 지역민들로 살았다는 성취는 지역사적 의미를 찾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다만 금번 ‘영동선 위의 사람들’에서는 근로자들에게 주목했고, 그 기차 위에 올라가고 오고 했던 승객들의 목소리는 담지 못하였다.     


셋째, 영동선의 산업화의 철도는 지역사를 국가사의 활동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 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산업역군들의 직업세계에 대해 표면적으로 알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동선 철로는 그리고 기차는 영동지역 나아가 국가 기간산업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한 측면은 그 내부 근로자들의 활동과 역할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다른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기초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영동선 철도는 한국사회에서 영동지역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게 해 줌으로써 그 상호이해의 장을 넓혀줄 것으로 여겨진다.

     

넷째, 구체적 경험의 일반적인 양상에서 볼 때, 영동선 철도공사 코레일 근로자들의 한국어 구술어휘의 풍부성이 더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직업세계는 그들만의 어휘 및 표현 언어가 쉴 새 없이 생산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어휘 및 표현언어를 안다는 것은 그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넘어 그 세계의 지혜와 통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첫 번째 통로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들의 구술 자료의 구축은 한국의 산업화시기를 뜨겁게 살았던 삶의 이야기를 국가의 노력으로 수집하는 못지않게 향후 영동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에 유형적․무형적 자산으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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