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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Apr 07. 2023

동해 송정, ‘백꽁‘ 할머니 이야기!

12. 브런치스토리와 떠나는 동쪽여행

백꽁_백 가지 재주가 있고, 일을 꼼꼼하게 잘 처리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별명

따뜻한 아침의 나라 동풍으로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한 복 받은 땅 동해 송정은 오래전 '백꽁'이란 별명을 가진 유명한 인물이 있었다. '백꽁'이란 말은 백 가지 재주가 있고, 일을 꼼꼼하게 잘 처리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별명이다. 송정의 남양홍 씨 '싼내댁' 외동딸 홍진녀(1894~1985)가 주인공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 별명이 따라다녔다고 오라버니가 2대 북삼면장을 지냈던 홍옥섭이다. 홍 '백꽁'의 남편은 '이도리'에 사는 강릉 김 씨 감찰운곡공의 17대손 추담 김진탁(1897~1986)이다. 부부는 1920년대 감리교회의 전신인 사랑방 예배 처소에 적극 참여하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러나 종갓집 시어른이 아들을 볼 때마다 '작은집 식구들이 예배당에 열성으로 나가니, 우리 집안에 종손이 안 생기는 거야. 서양 신보다 조상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셔야지 삼신할미가 후손을 점지할 것 아니냐?' 라며 매번 꾸짖자 기독교인의 길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백꽁 할머니, 사진_동해문화원 DB

'백꽁'의 진가는 날이 지날수록 이웃과 집안 문중에 널리 퍼졌다. 동네잔치나 제사 때 나물을 무치고, 탕을 끓이고, 어물이나 전을 부쳐도 손맛이 남달랐다. 또, 손이 재빨라  청소와 빨래는 물론 밭일도 옆 사람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손녀인 김정순(여, 76)씨는 어렸을 때 보고 들었던 '백꽁'이 할머니의 활약을 소개했다.

"옛날에는 빨래가 여자들에게는 중노동이었어요. 옷 천이 거의 광목이나 삼베이다 보니 만드는 것부터 빨래하는 것까지 전부 일일이 손질이 가야 했지요. 빨래만 해도 먼저 바느 질 한 부분을 뜯어내, 우물이나 냇가로 가 비비고, 문지르고, 빨랫방망이로 두드리고, 헹궈 집으로 갖고 오던 시절이죠. 그래서 큰 솥에다 잿물을 넣고 다음 찬물에 헹궈 빨랫줄에 열었어요. 어느 정도 마르면 이번엔 풀을 먹이고 반듯하게 차곡차곡 갠 다음, 다듬잇돌에 놓고 구김살이 펴지고 풀기가 고르게 펴지라고 방방이질을 했어요. 그다음엔 또 숯불을 넣은 다리미와 인두로 다렸지요. 그런데 이런 일을 우리 백꽁이 할머니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척척 했대요. 할머니는 또 삼을 삼아도 다른 사람은 넛 새 다섯 새인데 반해 일곱 새로 삼았대요. 삼배는 가늘고 색이 고와야 값을 더 받고 고급을 쳐주었는데, 할머니 삼은 북평장에서 단연 최고였대요. 매년 삼베를 팔아 논밭을 장만할 정도로 백꽁 할머니의 손재주는 유명했죠."
타고난 재봉틀 솜씨의 백꽁

'백꽁'의 손재주를 익히 알아본 남편은 어느 날, 서울에 갔다가 당시로는 엄청 귀한 손 재봉틀을 사 왔다. 당시만 해도 북삼변 일대에서는 재봉틀을 파는 곳이 없었다. 백꽁은 밤낮으로 재봉틀 사용법을 손에 익혔고, 기계 원리를 독학으로 깨우쳤다. 자연스럽게 '이도리에 사는 백꽁이 집에 가면 치마, 저고리도 하루 만에 만들어 준다더라.'라는 소문이 일자 일감이 끝없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막내딸 홍춘옥(여, 91) 할머니는 아득한 옛날을 기억했다.

"어느 날, 가까운 친척인 새댁이 옷감 한 보따리를 이고 우리 집에 왔어요. 그 새댁도 시집올 때 재봉틀을 사 왔는데, 고장이 나서 구석에 처박아 뒀다면서 좀 가르쳐 달라 했어요. 새댁은 아예 하루 묵으면서 우리 어머니가 재봉으로 누비저고리와 치마를 만들러 나가자 연방 감탄했어요.'아이고, 형님 솜씨는 새는 날 같소야. 어찌 그리 재빠르고 정확하게 잘돼요?' 하며 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일본에서 정식으로 양재기술을 배웠던 올케언니도 어머니 솜씨에 혀를 내둘렀지요."

당시 북삼면에서 좀 산다는 집마다 재봉틀을 장만했지만 수시로 고장이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고사까지 지내며 '제발 우리 재봉틀이 탈 나지 않게 해 주세요!' 하며 치성드리듯이 빌 정도였다. 그러나 기계 자체에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라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 대다수의 재봉틀일본식 발음, 미싱)은 방구석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었다. 백꽁은 귀한 것이 고장 났다며 애가 타는 집마다 다니며 고쳐주었다. 백꽁 부부는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모두 부모를 닮아 영특했는데, 아들 중 어머니의 손재주를 닮은 이 가 있었다. 바로 장남인 원로 문화활동가 동원 김영기(1916~2010)였다. 그는 훗날 향토사학자, 사진작가, 기자로 많은 업적과 책을 남겼지만 각별한 손재주는 사진기와 인쇄술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사진기 자체가 귀하던 시절에 이미 예술사진이나 기록사진을 찍었고, 암실과 현상 기구 일체를 집에 갖추었다. 이 사진기술은 훗날 장님이 이어받아 서울 충무로에서 오랫동안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또 1956년에는 송정으로 이사해 '문화인쇄사'를 30여 년을 운영하다 차남에게 물려주었다. 주위에서는 이 모두가 어머니인 백꽁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탓이라 여겼다.  자식들 3남 2녀 중 공교롭게 네 명이나 '남양홍 씨'와 결혼했는데 두 달과 장남, 차남의 짝 모두 '홍 씨'였다. 백꽁의 손자들은 경향 각지에서 맡은 일에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들 중 아버지 대와 마찬가지로 홍 씨 문중 '송단가'의 며느리가 된 동원의 3녀 김정순이다. 그녀도 '백꽁'의 손재주를 물려받아 오랫동안 재봉틀로 집안을 꾸려왔다.

"우리 어머니 홍순옥(1916-1976)은 일본까지 가서 양재기술을 배워왔는데도, 할머니 실력에는 못 미친 것 같아요. 고모 두 분과 큰언니는 할머니한테 배운 바느질을 시집가서도 30여 년 했어요. 둘째 언니도 66년부터 70년까지 송정집에 가게를 꾸며 '아리아 양장점'을 운영했어요. 당시 송정에는 '신도양장점'과 '뉴-스타일' 두 양장점이 있었어요. 나도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뉴스타일 양재학원에서 1년간 배웠어요. 다 배우고 집에 내려오니, 마침 언니가 시집을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또다시 그 가게터에 ‘예쁘다 양장점’을 차렸어요. 당시만 해도 재벌회사에서 기성복을 만들기 전이라 엄청 잘 되었지요. 한 5년쯤 지나니 손님이 슬슬 주는 게 보였어요. 하루는 물건을 하러 서울에 갔다가 동대문 광장시장을 지나는데, 포목점 앞에 사람들이 꽉 차있었어요. 그래, 저거야!라는 생각이 번뜻 떠올랐어 요. 그 길로 내려와 양장점을 정리하고 '예쁘다상회'로 상호를 바꾸고 포목점을 차렸지요."
예쁘다 상점, 사진_동해문화원 DB

김정순 씨는 그 후 30여 년이나 송정에서 포목점을 했다. 70년대 중반, 경제 성장과 함께 혼수품 붐도 일었다. 신부의 혼수품으로 이불세트는 물론 계절별로 한복 세트, 수예품, 도포를 바리바리 장만했다. 각 학교도 환경개선을 시작해 유리창마다 커튼을 달기 시작했다. '예쁘다상회'는 발 빠르게 봉고차까지 사서 납품을 했다. 김정순 사장은 심야차로 올라가 밤 새 장을 보고 새벽에 돌아와 영양제 주사로 피곤함을 풀었다. 당시 송정에서 예쁘다상회' 가 제일 장사 잘되는 집이라 소문이 났다. 그러나 돈을 번다는 것보다 고객과의 신뢰를 깨트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가난했던 시댁의 가세를 일으켰다. 김정순 씨는 평범한 생활에서 다시 내 일을 하는 여자'로 되돌아간 과정을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천과 재봉틀을 만지며 오랫동안 많은 고객들과 만났지요. 나와 한 번 인연을 맺은 고객은 다른 가게에 가지 않고 꼭 내 가게로 왔어요. 내 솜씨나 가격에 대해 신뢰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지요. 가게를 접은 이유는 너무 일에 매인 탓에 내 정체성이 뭔가?라는 의문이 생겼어요. 그래서 늦은 나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해보자 작심했어요. 사회 복지 공부와 시 쓰는 공부를 시작했어요.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서 상담 심리학을 공부했지만 잠 못 들 정도로 잡념이 생겼어요. 평생을 고객과 부대끼며 일하던 습관이 중단되니 그럴 수밖에요. 그럴 때, 친정어머니와 백꽁할머니가 자꾸 생각이 났지요. 두 분 다 재봉틀이란 도구로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걸 실현한 분이었잖아요. 나야말로 두 분 손재주를 물려받았으니, 이 나이에 맞는 걸 다시 해보자 작심했지요. 여러 생각 끝에 아들과 지인 도움으로 작년부터 '가페'를 차려 나의 일을 하고 있어요."
동원 김영기 옹이 운영 동해문화인쇄사, 2005, 사진_ 조연섭
참고문헌_ 이야기가 있는 송정, 동해문화원 8년의 기록, 글 홍구보, 기획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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