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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Apr 08. 2023

동해의 마지막 선비들, 강회계!

13. 브런치스토리와 떠나는 동쪽여행

동해의 마지막 선비들, 강회계

강회계지역의 뜻있는 선비들이 강학을 통하여 유학을 증진시키고, 유림 상호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계 모임의 하나로 금란계와 함께 운영된 동해지역 대표적인 계 모임이다. 특히 강회계는 강회계첩서, 강회계 조규, 계약범례, 계사 등 제반 규약을 살펴보면 계원의 친목보다는 강회를 통하여 유학경전과 강학을 위한 유학자들의 모임으로 당시 삼척군 관내에서도 일찍이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었던 북평읍과 근덕면에 거주하는 유림 위주로 구성되었으며, 일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후손들은 선조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유서 깊은 강회계는 창계 100년을 맞아 지난 2007년에 출간한 강회문유백년사를 비롯하여 단편적인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며, 지금까지 깊이 있는 연구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2년 송정동 소재 홍순성 전 동해문화원장(강회계 설립 당시 계원 홍재모의 손자)의 고택 가묘 책궤에서 강회계전문부강기, 강회홀기, 강회계시첩, 매도증서, 저축예금통장, 회문록 등 강회계 창계 당시부터 수십 년 동안의 활동상황을 기록한 관련 문건 다수가 발견됐다. 1930년대 작성한 강화계 관련 목록인 '강회계전 여기'가 공개돼 이미 100년 이전부터 작성해 온 강회계 관련 기록이 만지 덮인 문부궤 속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동해문화역사연구회 윤종대 회장은 '강회계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고찰'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930년 10월 29일 작성한 강회계 목록 강화계전 여기의 주요 내용은 '칠서'(사서와 삼경을 아울러 이르는 말) 문부책 1권과 정문 5권, 강계록 1권, 강계첩 1건, 홀기 1건, 강기 1권 등이다. 이외에도 강화계의 설립을 주도한 만재 홍락섭의 문집 '만재집'에는 강회계조규, 강회계첩서, 강회계 범례, 계사 등 다수의 문건이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때 늦은 감이 있으나 이들 자료를 통하여 강회계의 설립 배경과 운영 및 활동상황을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됨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더 깊이 있는 조사와 연구가 이어져 우리 지역학 정립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강회계의 설립

강회계는 1873년 2월 4일 동해 송정동에서 명망이 높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학을 통달하고 12세에 한시를 지은 만재 홍락섭이 평생 동지 강암 홍종손과, 김연선, 이근태, 홍순휴, 심일황 등과 함께 1905년 창립발기를 통해 1906년 9월 9일 계원 33명(북평 24명, 근덕 9명)으로 창립하고 창계 수에 홍낙섭이 취임했다. 이후 무릉계 시유회 개최 한시 백일장, 만재 서예전을 개최해 오다가 2006년 강회계 창립 100년 사를 발간하고 2007년 2월 10일 창계 100년 사 발간 출판기념회를 동해 천곡동 문화의 집에서 개최했다. 이어 2010년 계원 재정리를 발의해 개편동의를 얻어 강화계 개편 총회를 개최 승계존속 29명과 자진사회 11명 등 계원을 정비하고 재창계 했다.

계수 홍락섭 집, 강회계 설립주역, 사진_강회문유100년사
강회계 설립목적

강회계는 그 이름과 같이 유학경전의 강학을 위해서 설립한 계모임으로 설립목적은 창계수 만재 홍락섭이 저술한 강회계접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현재의 세상은 홍수와 가뭄으로 황폐해진 논밭과 같은데 농부는 논밭을 다시 가꾸지 않겠는가? 밭을 가는 농부가 황혜해진 밭을 버리지 않듯이 강회계원은 선비들로서 타락한 세상을 바로 세우는 일에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계의 설립목적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강회계 첩서 번역문 요약
옛날 주자께서는 유생들은 백록동 서원에 모아서 백록동 강규를 만들었고, 우라 나라의 제현들도 이것을 준용하여 학문에 나가는 사다리로 삼았다. 이에 선생은 제자들에게 권하고 경계하기에 선비 된 자가 스승을 모심에 강의하는 자리에 앉음으로써 벗들과 모임을 갖고 경을 품고 강의하고 질문하는 사람을 어찌 해치겠는가? 내가 일찍이 뜻이 있었으나 옛 것만 고집하고 과감하지 못하여 가지고 있는 재주도 나타내지 못하였다. 현명함을 바라는 일을 감행하였으나 잠유의 죄로부터 피하지 못하였을까 두렵다. 늦여름에 두어 명의 벗이 나를 만나서 무릇 선비가 세상에 쓰임이 있는 것은 과거를 보는 일이었으나 이제 완전히 바뀌어 과거가 없어졌으니 시골의 선비가 재주를 품었으나, 뜻을 펼 칠 수 없게 되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나 유생들은 계를 만들어 해마다 좋은 날에 술병을 들고 경치 좋은 좋은 곳에서 자연과 어울려 노래를 읊는 것이 선비가 때를 만나지 못하여 내가 할 일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이에 만재가 말하기를 '때를 만나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다.' 선비의 이름으로 술과 노래로 세월을 보내는 것은 옳지 않으니 어찌 여기에서 그칠 것인가? 대범한 사람은 포부가 매우 크기 때문에 궁핍하여 서민들 사이에 있더라도 자신을 다스리고 집안을 바로하여 세상에 나서 백성을 교화시키고, 풍속을 이루는 것이 학문의 공이다. 배움이란 것은 스승과 벗과 더불어 강마에 깊이 의지하지 않고, 의리를 궁구 하지 않는다면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것에 그칠 뿐이다. (중략)"    
강회계조규 주요 번역문

고을에서 추천하되 연세가 높고 덕이 있고 행하는 사람, 한 사람을 강장으로 하여 강의하는 자리에 앉아 경전을 강의하고 그 뜻을 묻게 한다.

문학에 높고 밝은 사람을 택하여 사강으로 삼아 강자의 성명과 읽은 책의 편명, 질의내용을 강기에 기록한다.

예에 단정하고 익숙한 사람을 택하여 사례로 삼아 강장과 빈장 그리고 제생들이 절하고 읍하고 오르내리는 예절을 인도하게 한다.

바르고 정중하고 예를 돕는 사람을 택하여 사정으로 삼아 떠들거나 의례를 벗어난 자를 규제한다.

글에 능하고 잘 읽은 사람을 택하여 '독홀'로 삼아 절하고 읍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절차를 알리게 한다.

공정하고 마을 잘하는 사람을 택하여 직일로 삼아 제생들의 선행과 과실을 기록하게 한다.

영민한 사람 두 사람을 택하여 한 사람을 사적으로 삼아 강의에 필요한 서적을 맡아보게 하며 한 사람은 사설로 삼아 책상과 벼루 등으로 맡아보게 한다.

공정한 사람을 사상으로 삼아 제생들의 상벌에 대한 예를 향하게 한다.

부지런하고 유능한 사람을 택하여 사궤로 삼아 술과 음식을 올리고 물리는 일을 맡아보게 한다.

강의한 책은 칠서(사서삼경)와 소학, 효경, 심경, 근사록, 격몽요결 등의 책으로 이들에 대하여 강의를 행한다.

과목은 용지 한 장에 첫 줄에는 성명을 쓰고 그다음 중에는 읽었던 책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고 의문이 있으면 적어서 바친다. (중략)

강회계를 창계한 계원들은 무릉계 반석에다 이름 석자를 쓰고 새겨 후대에도 부끄러움이 없는 선비가 되기로 다짐했다. 만재 홍락섭은 마음을 다잡고 다음과 같이 서문을 써 내려갔다.
"때를 만나고 못 만남은 운명이다. 힘으로 이루지 못한다 할지라도 숭상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무릇 인간 세상에는 포부가 가장 소중하며, 궁하요 촌락에 있다 할지라도 자신을 단속하고 나아가 가정을 바르게 하여 출세를 하고 백성을 교화하여 풍속을 이루게 함은 거기에 학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우는 자가 책 일기만 일삼고 스승과 친구 사이에 강마(학문이나 지식을 익히고 닦음)가 없으면 궁극적인 의리 요체를 알 수없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들의 강회를 여는 까닭이다."
송정 어르신 수연회 장면_1930, 사진 동해문화원 DB
전문부, 강기, 홀기, 회문록, 시첩 등 문서, 사진_동해문화원 DB
성리학적 교양의 기초, 강회계

일반적으로 계는 마을, 리, 읍 면 등의 소지역 단위로 계원 사이에 상호부조, 친목, 통합, 공동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에는 자제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계 또는 서당계도 있었으나 강회계와 같이 지역 단위를 넘어 예전의 북삼면과 근덕면의 거주자들로 구성하였으며, 설립목적도 단순한 친목이나 식리에 두지 않았다. 이처럼 강회를 위해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각자 계원이 갹출하여 유교경전을 강론하 고 실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유교적 사회질서를 회복할 목적으로 설립한 계모임은 유레를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강회계도 세월이 지나면서 계원의 세대교체와 신교육의 이수 등 제반 사회여건변화에 따라 강회보다는 친목 위주로 변모하게 되었으나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후손들에 의 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강회계의 서문, 강회조규, 강회범례, 계사 등 제규정은 오로지 성리학적 교양에 기초하였으며, 유교적 윤리의식이 지배하는 사회실현을 모색 한 우리 지역 향촌 유학자들의 마지막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절실히 요구하는 인성과 도덕성 회복의 과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그리고 지역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강회계가 추구한 학문과 숭고한 이념은 재해석할 가치가 충분할 것으로 본다.

참고문헌_윤종대, 강회계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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