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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Apr 09. 2023

동해 용정, 100호 사택!

14. 브런치스토리와 떠나는 동쪽여행

'100호 사택'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동해시 용정동 마을에 지어진 현, DB메탈 공장 100 가구 사택으로 독특한 건축구조와 원형보존 가치가 입소문을 타고 건축 관계자들과 사진작가들에게 관심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탄광촌 사택이나 이 100호 사택은 좁은 면적에 대량입주를 목적으로 지어 거주환경이나 미관을 고려하지 않은 연립 병렬 형으로 늘어선 집들이 마치 병영막사 같은 느낌을 주고 있기도 하다.

100호 사택, 1930년대 한·양·일 절충식 주택

또한 개광초기에 지은 곳이 많아 몇십 년 이상 된 건물이 많고, 상하수도 및 부대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두 가구에서 다섯 가구가 한 동을 이루고 있어서 증개축이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이 사택 내부 시설은 세대별로 목욕탕이 있는가 하면 생활시설은 아주 편리한 사택이었다. 벽의 경우 블록을 한번 싹만 쌓아 올리고 단열처리도 하지 않아서 방음, 방습이 제대로 안되고, 이웃집에서 건네는 말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사택이다.            

100 사택 전경, 사진_조연섭

또 광부사택은 슬레이트와 기와를 사용한 맞배지붕으로서 벽체는 블록이나 목판이며 연립형태를 취하고 있어 직원사택에 비하면 많은 취약성이 있다. 게다가 부엌은 구조상 방 크기의 2분의 1 정도며 연탄아궁이 까지도 방문가까이 있어 연탄가스에 노출되는 시설들이다.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 생가, 사진_조연섭

언뜻 보면 군대 막사와 비슷하지만 부지 9만여㎡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9년 DB메탈 사택 4동 1158㎡이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56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용정마을

100호 사택이 위치한 용정마을은 1936년 삼척개발주식회사가 북삼화학 공장과 삼척철도를 건설함에 따라 마을이 그 부지로 편입되어 주민들이 각지로 떠나게 됐다. 일부 주민들이 오산동에 남아 지금에 이른다. 나머지 대부분의 주민들은 1936년 용정 해안 빈 지에 조성된 택지로 집단 이주했고 동부사택으로 편입된 곳은 용정동의 대밭 골과 방축이다. 대밭 골은 동부산업 사택 뒤쪽, 숫골의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각종 대나무와 산죽이 많은 마을이다.             

합숙소, 사진_조연섭

일제 강점기에 북삼화학 공장이 있고, 사원용 사택이 있었던 용정마을은 <용장제언>이란 저수지를 비롯해 아름다운 마을이어서 이 지역의 학자였던 김구혁은 삼봉세월(삼봉 산에 뜬 밝은 달의 모습), 옥산만풍(옥산에 부는 늦은 바람), 송촌담연(송촌에 피어오르는 맑은 연기), 오리 삽운(봉오골에 자욱이 낀 구름 떼의 모습), 성치웅치(성재에서 노니는 장끼의 모습), 제담시안(용장제언 너른 연못에서 쉬고 있는 기러기), 전평가회(앞들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 후림 녹축(뒤 숲 대밭 골에 늘어선 푸른 대나무 전경) 이란 용정팔경을 지어 아름다운 용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현대한옥협회 회원(2019년), 사진_조연섭

현재 DB메탈 사택자리는 김구혁이 소개한 용정팔경 중 2곳 용장제언과 대밭 골과 관련이 있는 곳에 지어진 사택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이 사택은 광복 이후에도 공장이 유지되었기에 사택에 근로자들이 생활하였고 일부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사택에 살았다.

100호 사택의 가치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 사택은 일제 강점기 건축 중 민간회사의 사택으로서 집합적인 배치 특성과 주거형식, 특히 기혼자 숙소와 미혼자의 숙소(합숙소)가 함께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한 드문 사례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형재 교수(전, 정림건축 디자인대표, 현 고문)는 "서구의 건축 기술과 일본의 전통양식을 혼용한 속복도형 화·양절충식 주택에다 온돌이 수용되는 등 1930년대 한·양·일 절충식 주택의 한 사례로 한국 근대 주거사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으며 문화재 지정에서 제외된 연립 형 사택도 보존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관광객 모습, 100호 사택, 사진_조연섭

일제 강점기 산업발전과정의 건축형태와 근로자 주거 생활에 관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으며, 현재 이러한 형태의 합숙소는 유일한 상태이고 취락을 이루고 있는 사택과 합숙소가 함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인문자원

앞서 소개한 이 용정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8경으로 소개한 인물 김구혁과 용정팔경을 비롯한 강원도지사를 지낸 김진선 전 지사와 동해시 부시장을 지내고 현재 동해문화원장으로 재임 중인 오종식 씨도 이 마을출신이다. 100호 사택이 전국적으로 이름난 것은 1969년 6월 간첩선 침투 사건 때이다. 묵호 해상에 나타난 75톤급의 간첩선과 우리 국군이 교전을 벌이던 중 무반동포 포탄 한 발이 이 사택에 떨어져 일가족 5명이 사망한 일이다. 마을사람들은 전년도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 120여 명이 침투해 영동지역 일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터라 전쟁이 나는 줄 알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과거 질소비료와 카바이드를 생산하며 호항을 누렸던 시절도 있었지만 60년대에는 전기부족과 운영자금 부족으로 공장 가동률이 60% 정도를 보이며 어려운 시절을 함께하며 지금의 DB메탈에 이르고 있다.          

사택 병원, 사진_조연섭

이 마을 출신인 오종식 동해문화원장은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가 높다고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100호 사택은 앞으로 현장 원형을 유지하며 도시재생이나 문화재생 사업을 도입해 재해석을 통한 1930년대 한·양·일 절충식 주택의 한 사례로 한국 근대 주거사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100호 사택, 사진_ 조연섭
참고문헌_ 오마이뉴스 조연섭기자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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