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매거진_ 글소풍
얼음이 고마운 계절, 폭염이 이어지는 동해입니다. 찬 거 먹지 말라지만, 지금은 얼음이 효자인 계절임은 틀림없습니다. 폭염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 얼음 한 조각이 주는 시원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안식입니다.
사람에게 지친 하루, 한낮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저녁 무렵, 동해 삼화지역의 대표적인 마을 사랑방 ‘거북당’에 와 있습니다. 마을 민속 300년 ‘보역새놀이’ 야학지원 관련 대기 중입니다. 거북당은 마을 사람들에게 작은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마시는 얼음 허브차 한 잔은 그야말로 최고의 휴식입니다. 허브차는 천천히 식어가는 얼음과 함께 차가운 신선함을 입안 가득 채우며, 몸열기를 서서히 식혀줍니다.
거북당의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저녁 바람은 더운 여름날의 마무리를 부드럽게 만들어줍니다. 그 바람에 실려 오는 풀 내음과 함께 얼음 허브차의 향긋한 향기는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듯합니다.
어린 시절 여름날이 떠오릅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더운 날씨 속에서 얼음을 찾곤 했습니다. 그때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얼음 한 조각이 주는 위로의 의미가 더욱 큽니다. 얼음 허브차 한 잔을 마시며, 나는 현재의 더위를 견뎌낼 힘을 얻고, 다음 날을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이처럼 얼음 허브차는 단순 음료가 아닙니다. 하루의 끝자락에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의식입니다. 찬 거 먹지 말라는 충고가 무색하게, 지금 이 계절에 얼음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친구입니다. 37도 폭염 속에서 얼음이 주는 시원함과 거북당에서의 차 한 잔이 만들어주는 작은 쉼표가 있기에, 나는 이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름날피로를 녹여주는 얼음 허브차 한 잔, 그리고 거북당에서의 소소한 휴식.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오늘도 하루를 감사하며 마무리합니다.
거북당_동해시는 사람과 철, 시멘트 등 산업이 만나 근대산업을 이끈 도시다. 그 중심마을의 하나인 삼화에는 <거북당>이 있다. 이 거북당은 과거 화려했던 삼화시절 워낙 부지런하다 해서 일명 <거북이아저씨>로 불린 한 어르신이 도장제작, 전자제품 등을 수리하던 전파사 장소다. 폐 전파사를 <동해 삼화지구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가 주민들과 문화적으로 재생한 공간이다. 다시 말하면 거북이아저씨가 거북당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거북당은 이미 주민이면 한 번씩 찾아봐야 하는 삼화지역 <참새방앗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