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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Apr 14. 2023

두타산 신선 체험, 최생우진기!

19. 브런치스토리와 떠나는 동쪽여행

최생우진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소설집 '기재기이'에 기록된 신선 체험기이다. 기재기이는 기재 신광한이 쓴 4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신광한(1484~1555)은 홍문관, 가간원, 사헌부 등 관직을 두루 거쳐 1515년(중종 20년)에 삼척부사로 재직했다. 그의 작품 4편 중 '안빙몽류록'은 꿈에 꽃의 나라를 유람하고 돌아온 이야기이고, '서재야회록'은 서재에서 문방사우를 만나 글을 짓는 이야기이다. 나머지 '최생우진기'는 최생이란 선비가 용추동 어느 골짜기에서 용왕과 신선을 만나 시를 짓고 대화를 나누었던 하루를 적인 이야기이다. 4편 모두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중 무릉계와 용추가 무대인 '최생우진기' 일정 부분을 축약 현대문으로 정리했다.

삼척 진주부 서쪽에 두타산이 있는데, 그 형세는 북쪽으로 금강산이, 남쪽으로 태백산이 이어져 있다.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높은데, 동쪽이 영동지방이다. 산 높이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고 산속 골짜기에 못이 하나 있다. 이 못 또한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다. 이 못 위에 학이 둥지를 틀고 사는데, 언제부터 사는지 알 수 없다. 이곳을 학소동 혹은 용추 동이라 부른다. 세상 사람들은 그곳을  진경이라 부르는데, 아무도 그 끝까지 기본 사람은 없었다.


강릉 임영에 호탕하고 기게 높은 최생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선 공부를 하는 증공이라는 스님과 두타산 '무주암'에서 오랫동안 같이 지냈다. 어느 가을날 책을 보다가, 아름다운 단풍에 매료되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그는 증공 스님에게 평소에 궁금히 여기던 용추동으로 가자고 졸랐다.

"내가 두타산 일대에 아주 익숙한데, 용추동만 가보지 못했지요. 스님과 같이 가보고 싶습니다."

"어허, 나도 여기서 21년이나 살았지만 딱 한 번밖에 못 가봤고, 그곳에는 신령스러운 진인이 살고 있어 만나려 했지만, 불가능했었소, 그러다 북동쪽에 틈이 보여 기어갔더니, 벼랑 끝에 여러 사람이 앉을 만큼의 넓은 반석이 있었소. 그런데 발을 올리기만 해도 흔들거려 금방 내려와야 했소. 다행히 나는 불력의 힘으로 아주 잠깐 골짜기 입구를 보았지요.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푸른 용추폭포와 멀리 학이 날고 있는 것만 보았지요."

"저를 그곳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매우 위험해 안됩니다."

"한번 가보기만 하시지요."

중공의 만류에도 자꾸 조르자 두 사람은 지팡이를 짚고 산길로 나섰다. 벼랑 아래에 오자 최생은 나는 듯이 올라가 흔들이는 반석 위에 섰다.

"이 바위는 평탄한 길 딛는 것과 같은데, 선사님이 나를 속이셨구려!."

최생은 증공을 놀리듯 큰 소리로 학소와 용추가 보인다며 소리쳤다. 그 순간 최생이 갑자기 벼랑 밑으로 떨어졌다. 증공이 놀라 울부짖으며 최생을 불렀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증공은 통곡하며 절로 돌아와 노승에게 거짓말을 했다.           

            

"최생은 산 아래를 몇 번 오가더니 기생집으로 간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님들은 증공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여러 달이 지나, 겨울이 되었다. 내리던 눈이 그치고 달이 떴는데, 누가 문을 두드리며 '중공!'을 불렀다. 문을 열어보니 최생이었다.

"지금 내가 보는 게 최 공의 혼이요?"
1940년대, 용추폭포, 사진_동해문화원 DB

최생이 싱긋 웃으며 막 날아가는 검은 학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벼랑에서 떨어졌던 곳이 쌓인 낙업 위여서 다치지 않았지요. 그래서 일어나 주위에 있는 약초를 씹으며 용추동 일대를 구경했는데,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지요. 구경을 다하고 쉬는데 현학 한 쌍이 못에서 물을 마시기에, 가만히 다가가 목을 끌어안고 등에 올라탔더니 절 뜰에 내려놓았어요."

"늘은 이 몸과 지낸 지 몇 년인데, 그런 거짓말을 하시오? 나 그대와 다시는 만나지 않겠소"

최생은 돌아서는 증공을 붙잡고 누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동안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최생이 벼랑에 떨어질 때의 기분은 술 취한 듯 꿈결 같았다. 바닥에 내려서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한참만에 일어났다. 그런데, 있는 곳이 땅이 아니라 나무 위였다. 나무는 향기로웠고 가지들이 담요를 펴놓은 것처럼 평평했다. 나무에서 내려와 벼랑 바위에 가보니 덩굴 한 가지가 있어, 그걸 잡고 올라갔더니 또 다른 절벽이 나타났다. 얼마 뒤 절벽 아래에서 구름이 피어올라와  최생은 덩굴을 잡고 살펴보니 굴이 있어, 그곳에 들어갔다.


굴속에서 길을 따라 한참이나 들어갔다. 수 십리 갔을까, 푸른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물줄기를 거슬러 산을 올랐는데, 하늘과 맞닿는 듯했다. 안개 사이로 '만화문(萬化門)'이라 쓴 성문이 보였다. 문을 지키는 두 사람은 이무기 머리에 등짝이 자라와 상어 같았다. 최생은 왕을 만나러 왔다고 말하자 문지디가 양계陽界 인간이라며 무시했다.

"나도 너희 왕의 손님이다. 왜 이리 무례하게 구는가?"

얼마쯤 지나자 검은 관을 쓴 사람이 나와 안내했다. 다섯 중문을 지나니 '조종전'이 있었는데, 기둥이 황금이고 주춧돌은 푸른 백옥이고 의자에는 진주로 만든 주렴과 비단 휘장이 펄럭였다. 그곳을 지나니 '청령각'이 나왔는데, 영롱하고 서늘했다. 사람들 모습은 수정처럼 깨끗했다. 마침 내용의 수염에 우뚝 솟은 코와 눈이 빛나고 몸이 웅대한 왕이 나타났다. 최생은 두 번 절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손님 셋이 있었다. 선의를 입은 동선, 도복을 입은 도선과 나머지 한 사람은 산선이었다. 왕이 말했다.

"현인께서 양계에 사시고, 나는 바다를 다스리니 구애될 것이 업는 사이요"

왕이 음식을 내오라 하자, 무슨 음식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술 한잔을 마시자 배고프고 목마르던 것이 깨끗하게 없어졌다. 이어 음악 연주와 노래가 끝나자 여덟 가람이 갑옷을 입고 창과 칼을 부딪치며 춤을 추었다. 왕이 최생에게 다시 말했다.


"과인은 수부에 외따로 사는지라 문자의 풍도 풍채와 태도를 들어보지 못했는데, 유부도선이 다 모인 자리이니 유자인 최공께서 먼저 용궁회진시 30운을 지어 읊어보시지요."


최생은 붓을 들고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중략) 9년 홍수 다스린 요 임금과/7 가뭄 다스린 탕 임금도/ 모두 제왕의 명 공경히 받들어/ 모든 일을 백성 위해 하였네.(중략) 늘 풍운을 몰고 속세를 떠나/ 신선 벗하여 노닐고 싶었네/ 우연히 전원을 한번 엿보다가/ 천 길 벼랑으로 떨어졌네/ 정말 몰랐네. 함정 속에 살길 있어/ 일월 같은 용안 뵙게 될 줄을.
(중략)'

왕은 9년 홍수와 7년 가뭄을 음미하며 최생의 시를 칭찬했다. 이어 '대다수의 속세 유지들은 임금에게 아첨하고 홍수와 가뭄을 하늘의 운수로만 돌리고 사람의 할 일을 게을리했다면, 요와 탕 임금이 어찌 훌륭한 점이 있다 하겠소.'라 말했다. 왕은 동선에게 한 마디 하라 했다. 동선은 '내가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기 싫어 하늘가에 산지가 300년이 넘었는데, 고향 생각이 나 한 번 갔었지요. 그런데 울적한 심정으로 한없이 배회하며 탄식을 했지요' 하며 30운 율시를 써 내려갔다.


왕은 동선에 이어 도선과 산선에게도 시를 짓도록 했다. 도선은 용궁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산선은 불교의 참선과 인연에 대해 지었고, 왕도 음양의 조화, 인륜의 이치 등을 노래하다 말미에 '어진 마음 지니고 아득히 깊은 곳에서 만 년이 마치 하루같이 지났네.'라 읊었다. 최생은 왕이 있는 용궁에서 세 신선들과 술을 마시며 즐겼다. 왕이 "돌아가고 싶으시겠지요?" 물었다. 최생은 속세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다고 대답했다. 동선이 웃으며 10년을 더 살 수 있는 알약을 꺼내주며 '10년 뒤에 봉래섬에서 만나자. 단, 오늘 일을 퍼트리지 마라.'라며 당부했다.


최생은 증공 스님을 떠올리며 불사약을 얻기 원했다. 그러자 동선이 "신선이 되고자 원한다고 다 될 수 있다고 여기시오? 세상에서 신선이 될 분수도 없으면서 신선이 되는 약을 먹는 자는 한갓 수명을 재촉하기에 족할 따름이요."라 충언을 했다. 최생이 문을 나서니 현학이 기다렸다. 목을 안고 눈을 잠깐 감았는데, 절의 뜰이었다.


최생은 증공에게 "나는 이것이 단지 하루 사이의 일인 줄 알았는데 몇 달이 지났단 말입니까? 선사들과 무지개 구름 마차 타고 십 주 삼도 사이를 노닐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라며 말을 마쳤다. 그 후, 최생은 입산해 약초를 캐며 살았고, 증공 스님은 믿기지 않은 최생의 신선 체험 아야기를 사람들에게 자주 들려주었다.

참고문헌_이야기가 있는 삼화, 동해문화원 8년의 기록, 글 홍구보, 기획 조연섭
 1990년 범우문고_090판, 박헌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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