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브런치스토리와 떠나는 동쪽여행
3일과 8일로 끝나는 날 열리는 요즘 ‘북평민속오일장은 봄을 알리는 ‘모종장’으로 알록달록 꽃밭이다.
영동남부 지역은 꽃샘추위 때문에 봄이 늦게 찾아온다. 그러나 계절은 어김없이 불어오는 훈풍과 함께 꽃망울을 터트리고 만다. 산수유를 시작으로 생강나무, 매화, 개나리, 동백, 벚꽃이 만발한다. 들판은 복수초, 유채꽃, 제비꽃, 산마늘과 튤립, 수선화, 춘란이 활짝 핀다. 농부들은 기지개를 켜며 들판으로 나와 농사를 준비한다. 언 땅이 녹으면 춘란이 활짝 핀다. 계분을 뿌리고 경운기, 트랙터로 밭을 갈아 골 타기를 하고 풀 방지용 비닐을 씌운다. 제일 먼저 심는 작물은 감자다. 구멍을 내고 감자씨를 넣고 흙으로 덮는다. 올해의 첫 농사가 시작이다.
다음 작업은 고추 심기다. 봄이 되면 '북평오일장'도 활기가 넘친다. 점점 더 장꾼들이 많아지고 난전은 지난겨울 보이지 않던 품목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각종 묘목이 도로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손님들을 유혹한다. 수년 전, 매실이 몸에 좋다고 하자 너도나도 마당가 텃밭에 매실나무를 심었다.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서 인기 끌던 대봉감나무도 한계가 왔다. 이젠 매실도 감도 농약을 치지 않으면 수확을 기대하기 힘들고, 과잉 생산된 과실은 수익이 안 된다. 근간에는 TV 건강프로 덕인지 천식에 좋다는 개복숭아, 숙취 해소에 좋다는 돌배, 통풍에 좋다는 개다래, 피부노화 방지에 좋은 석류나무 묘목 등이 인기다. 또, 화단이나 담 밑에 심는 각종 꽃나무도 인기다.
북평 모종장 인기는 편리한 교통과 선진농업
상추, 키커리, 쑥갓, 케일, 콜라비, 근대, 머위, 청경채 등 30여 종류의 쌈 채소 모종 철이 되면 북평장은 본격적인 '모종장'이 시작된다. 이어 민속 채소라 불리는 당귀, 신선초, 명이나물과 야콘, 고추 모종, 고구마 순이 나오기 시작하면 북평장은 절정에 다다른다. 고추 모종만 해도 청양, 아삭이, 일반고추 등 10가지가 넘는다. 멀리 가까이서 농사꾼들이 토마토, 파프리카, 피망, 땅콩, 미나리 모종을 사기 위해 북평장으로 몰려든다. 이렇듯 '북평오일장'이 '모종장'으로 불릴 만큼 모종이 많은 이유는 교통이 편하고 선진농업을 연구하는 농업인이 많기 때문이다.
북평장터에서 가장 먼저 종묘사를 운영하셨던 분은 이건팔(1929~1993)씨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 5.16 혁명 후에 퇴직하고 북평읍 공화당 관리장을 역임할 정도로 대인관계가 넓었다. 붙임성 있는 언변과 인사성이 밝아 많은 사람이 가게(진흥종묘)를 찾았다. 각종 씨앗과 비료, 신형 농기구, 당시 처음 선보인 수동식 분무기가 농민들에게 엄정 인기가 좋았다. 특히 장날이 되면 국밥집 골목 끝에 있었던 '진흥종묘'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건팔씨는 1991년 시행된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자의 반 타의 반 출마해 거뜬히 당선되었다. 그 후 의회 활동과 사업을 의욕적으로 벌였지만 1993년 갑자기 지병으로 별세하여,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북평장터의 또 다른 종묘사는 우체국 앞에서 임진호(1919~2010)씨가 운영했던 '영풍상회'였다. 그는 6.25 때 고향인 황해도 해주에서 미군을 따라 남으로 내려와 북평장터에서 자리 잡은 인물이다. 처음은 남의 땅을 임대하여 농사를 지었다. 같은 기후와 토양 조건에서 농사를 지었음에도 그의 농작물은 인근의 농작물과 비교해 월등하게 잘 되었다. 사람들이 찾아와 그 비결을 묻자, 농업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으로 익힌 나름의 농사기술을 알려주었다. 그는 수확한 농산물을 팔아 매년 읍사무소 인근의 밭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임진호 씨의 2남 5녀 중 막내딸 임선화(여, 65)씨가 '영풍상회' 당시의 모습을 기억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가게를 안 하고 농사만 지었어요. 식사 때가 되면 우리 식구들은 임의로 이름 붙인 '해수욕밭'(현 주공 1차), '읍사무소'(현 동사무소 옆), '학교밭'(현 북여중 입구)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갔어요. 그러나 종묘사를 차여 씨앗과 농기구, 농약을 팔았는데 어머니도 장날이 되면 가게 앞에서 국밥과 술을 팔았어요. 아버지는 술을 엄청 좋아하셔서 손님이 오면 술상부터 내오라고 소리쳤어요. 당시 손님은 강릉에서부터 호산령 넘어 정선에서까지 우리 가게로 왔어요. 먼 데서 오다 보니 식사를 거르기 일쑤고 피곤해 보이니까 술대접을 준비하는 일이 많았지요. 아버지는 우리 집 옆으로 큰 창고를 지어 요즘 말로 임대업도 했어요. 장날마다 집 앞에 미전이 섰는데, 잡곡은 장사꾼들이 임계, 정선에서 사 왔어요. 장날 하루 전에 트럭으로 싣고 온 자루를 창고에 보관했다가, 장날 아침에 꺼내 팔았어요. 70년대 후반부터는 비닐하우스 농사가 시작되었는데, 밭이 넓은 이도리, 나안리, 삼화 등지에서 비닐과 파이프를 사러 왔어요.
아버지는 장날에 번 돈을 전대에 차곡차곡 넣어, 밤 열차를 타고 서울로 물건을 구입하러 가셨어요. 새벽에 청량리에 내려 종로 3가에 있는 종묘사어 들러 물건을 샀어요. 짐이 많으면 소화물로 부치고 적으면 직접 갖고 오셨어요. 농기구나 하우스 파이프 등 무거운 것은 아예 화물차를 임대해 직접 싣고 왔어요. 그런데 술로 인해 불상사가 여러 번 생겼어요. 술을 워낙 좋아해서 열차 안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전대가 옷 밖으로 노출되다 보니 쓰리꾼의 표적이 되었지요. 전대며 옷에 칼자국이 난 모습을 여러 번 본 적 이 있었어요. 일 년 중 한겨울만 빼고 한 달에 두세 번 장날 밤이면 청량이행 밤 열차를 타셨지요. 아버지는 아침마다 자전거 뒤에 장부를 싣고 외상값을 받으러 다녔는데, 거의 빈손으로 오셨어요. 수확철이 아니면 농촌에 돈이 있을 리 없었으니까요. 제가 당돌하게 '아버지, 돈 없으면 물건을 주지 말지, 왜 자꾸 외상을 줘요?' 하며 몇 번이고 건의했지만 '수확하면 준다잖아!'라고 하시며 계속 외상을 줬어요. 아버지는 80살이 넘게 장사를 하셨는데, 농약 냄새 때문에 늘 골이 아프다 하셨어요.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기력이 다 빠져, 가게 문을 닫게 됐어요."
김영록(남, 75)씨도 1975년부터 40년이 넘게 장터에서 '홍농종묘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금과는 다른 7,80년대 장터 분위기를 회상했다.
장사 잘된 북평장, '오전장'으로 부르기도
"가게를 하기 전, 종묘사 직원으로 북평장터에서 자주 오곤 했어요. 오가면서 보니 북평이란 곳이 교통도 편리하고 토지도 넓은데, 종묘사는 '진흥종묘'와 '영풍상회' 두 가게만 있었죠. 그때만 해도 젊었던 터라 내가 설 자리가 있을 것 같아 무조건 식구를 데리고 왔어요. 장터를 다니면서 살 집을 찾았는데, '복래관'이란 요정을 했던 집이 마침 비어 있어 이사했어요. 그런데 내 예측과 달리 장사가 잘 안 되었어요. 객지 사람인 데다 기존의 두 분 가게에 단골손님이 워낙 많아서였지요. 그러나 차츰 장사가 되기 시작했는데, 송정 들판의 땅을 임대해 대파를 전문적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우리 집의 단골이 되었어요. 요즈음과 달리 그때는 대파 씨를 밭아다 뿌리는 직파를 했어요. 그러나 씨의 소비가 엄청났죠. 또, 대파는 병충해에 약해 농약을 많이 뿌렸어요. 또 다른 고객은 도계, 상정, 미로, 도경 사람들이었어요. 이분들은 장날이 되면 첫 기차를 타고 왔는데, 오전에 소출한 농산물을 장에 다 팔고, 오후 1시 차를 타고 돌아가곤 했어요. 이분들이 하도 많아, 그땐 북평장을 '오전장'이라 했어요. 그런데 꼭 구입해 가는 품목이 배추, 무, 당근 파, 양파 등의 채소 씨와 농약이었고, 그 양을 무시 못했어요. 그리고 인근에 과수원이 점점 많아지자 살충제인 파라치온, 수미치온부터 제초제인 크라목션이 엄청 팔렸어요. 이 농약들은 명구, 이화명나방, 진딧물 등을 없애는 살충제이고 잡초를 제거하는 제초제인데 사람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습니다. 농사를 편하고 알차게 짓기 위해 이런 약들을 구입했는데, 필요악이 되어 농촌의 큰 문제로 대두되었죠. 지금은 이렇게 독성이 강한 농약들은 아예 생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흥농종묘사'와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종묘사가 장터에 문을 열었다. 초등학교 입구(현 한마음한의원) 건너편에 '대송종묘사'라는 간판이 걸렸는데, 처음은 주오 천막을 팔았다. 장날이 되면 각종 농기계와 농약, 씨앗은 난 전에서 팔았고 주인은 가게 안에서 재봉틀을 돌렸다. 낟알을 타작하고 건조할 때 주로 사용했던 멍석은 무겁고 보관하기 힘들었는데, 비닐 천막은 질기고 가벼워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치수에 맞게 재단해서 재봉을 했다. 이때 많은 돈을 벌어 우체국 옆으로 옮겨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2년 전은 묵호 중앙시장 입구에서 영업을 하던 '부흥종묘사'가 북평파출소 옆으로 옮겨와 영업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종묘사는 장터 중앙통에 있는 '서울종 표사'이다. 강릉농고 출신이고, 종묘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운영하는 심삼섭(남, 61)씨가 예전과 달라진 모종시장에 대해 말했다.
"북평장에서 모종을 사는 고객은 대부분 소농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대량으로 농사지어서 판매해 수입을 내시는 분들은 본사와 직거래를 하거나 직접 하우스에 파종을 해서 충당하지요. 우리 가게에서 모종을 사 가시는 분들은 주로 텃밭 농사를 지어요. 그러나 보니 여러 모종을 심어서 집에서 소비하고 남으면 자식들, 친척, 친구들, 이웃과 함께 나눠 먹지요. 이분들은 마치 대형마트에 가서 여러 물품을 사듯이 모종 구입도 그런 식으로 원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다양한 종류를 팔기 위해 선반을 만들어 진열했어요. 모종이 컷을 때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가격표를 붙여 놓았지요. 초보 농민은 질문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소비자도 좋고 우리도 편하지요.
처음은 우리도 외상거래를 했어요. 그러다 점차 가격 일원화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단골이라고, 안면이 있다고, 만이 사간다고 더 주고 거기다 외상까지 주면 공평하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아예 우리 집은 정찰제로 못을 박았어요. 장날에 오는 맛이 값을 깎고, 덤을 더 받는 것인데 우리 집은 안 그러하니 야박하다는 소리도 듣지요. 그렇지만 확실하고 다양한 제품을 공급하고, 사후, 관리, 병충해 상담 등 새로운 정보 서비스로 유대관계를 맺어 왔지요. 이로 가격 흥정을 하는 그런 경우는 없었어요.
OECD 회원국은 선진농업을 위해 '판매추적이력제 PLS'를 지켜야 되는데 우리 농가는 '경영체'에 등록된 농민이 해당된다. 또, '농약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가 도입되는 등 농사도 날로 선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식약청'에서는 먹거리에 해당되는 일제 물품에 관여하고, '농산물관리사무소'는 전국의 경영체농가와 채소상에 이 제도를 도입하지요. 그래서 저 스스로 농약에 대한 공부를 철저히 하고, 고객에게는 병충해가 발생하면 그 작물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오라고 했지요. 그러면 그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확대해 증상과 처방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농사를 조금 짓더라도 이제는 과학적인 사고로 접근해야지 주먹구구식으로 하다가는 결실하기 전에 다 잃고 말지요. 모종이나 씨앗, 농약을 파는 우리 입장에서도 전문가 수준까지 가야만 되는 거지요."
참고문헌_동해문화원 8년의 기록, 이야기가 있는 북평, 글 홍구보, 기획 조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