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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10시간전

동해가 빚은 목소리, 최부경의 '비목' 열창

145. 동쪽여행

메조소프라노 최부경, 소프라노 조우리의 성악 듀오 콘서트가 21일 밤 동해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콘서트는 풍부한 경력과 내공이 빛나고 성악의 진수를 보여준 무대였다. 이날 열창했던 많은 곡 중에서 필자는 우리 가곡 '비목'이 특별한 감동이었다. 대중음악을 소개하는 방송인 경력도 있지만 특히 가곡을 좋아했던 개인 취향도 반영된 시간이다. 우리 가곡 ‘비목’은 예술적 향유와 깊은 역사적, 정신적 가치를 품고 있다. 특히 며칠 전 워크숍 일정으로 화천 백암산 정상의 '비목' 장소를 다녀온 후 들은 이 노래는, 단순 음악의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고 우리 역사와 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비목’은 고 김종환 작곡가와 한명희 시인의 협업으로 탄생한 곡으로, 6.25 전쟁 당시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노래는 전장에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명용사들이 남긴 희생과 그들의 묘비를 대신하는 ‘비목(碑木)’에서 출발한다. 나무 조각 하나만 꽂혀 있는 돌무덤은 말 그대로 ‘잊힘’과 ‘기억됨’ 사이에 놓인 존재를 의미하며, 이는 비단 전쟁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마주하는 모든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비목’은 전쟁의 아픔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무명으로 살아가다가 조국을 위해 죽어간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담고 있으며,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문화로 과거를 잊기 쉽다. 그러나 ‘비목’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 우리에게 기억의 의무를 상기시키며, 이 희생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린다. 이는 인간 사회가 지속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기반이자 공동체 의식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진실이 왜곡되고, 자극적인 콘텐츠와 개념 없는 문화 권력이 대중을 지배하는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비목’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이 곡이 상기시키는 숭고한 희생과 정의에 대한 존중은, 우리가 마주하는 거짓과 타락에 저항하는 힘을 제공한다. 희망이 고갈되는 시기일수록 우리는 과거의 정신적 유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며, ‘비목’이 말하는 기억의 윤리는 곧 새로운 희망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번 듀오 콘서트에서 ‘비목’이 감동적으로 재현된 것은 공연 그 이상이다. 성악이라는 장르를 통해 역사적 상처를 노래로 승화시킴으로써, 함께 자리한 모두는 잊힌 희생자를 새롭게 기억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예술이 개인과 공동체를 치유하고, 서로의 마음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 시간이다.


‘비목'은 한 시대의 노래에 머물기보다 세대를 관통하여 우리 민족의 정신적 자산으로 자리 잡아야 할 중요한 문화적 작품이다. 전쟁과 평화, 희생과 기억의 교차점에서 탄생한 이 노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며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가치들을 담고 있다.


이 곡이 공연된 21일의 밤은 ‘비목의 정신’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던 공동체의 본질과 윤리적 사명을 재발견한 자리였다. 이 정신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유산으로, 앞으로의 세대에도 끊임없이 울려 퍼져야 할 메시지이다. 숭고한 희생은 기억 속에서 새로운 희망으로 재탄생한다. 동해의 딸 메조소프라노 최부경이 열창한 ‘비목’은 그 길을 안내하는 음악적 등불이다.

비목(노래 최부경, 반주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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