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동쪽여행
설화에서 희망을 찾다, 시민 뮤지컬의 가능성
7일 저녁 동해문화예술회관에서 초연된 시민 뮤지컬 “동해 용왕님이 사랑한 효녀”는 지역문화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빛나는 시간이었다. 이승철 문학박사의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설화” 에서 효심이 돋보이는 효녀와 용왕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동해 대진 “노고암 바위설화”를 바탕으로 약 5개월간 준비해 이날 첫 무대로 공개했다. 이 작품은 최근 새로 출범한 사단법인 강원민예총 동해지부(지부장 유재민)가 주도해 시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실이다. 공연은 깊은 감동과 연속된 박수 속에 막을 내렸다.
희망의 기반, 기록과 지역학
뮤지컬 제작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기록의 중요성이다. 지역 설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은 귀중한 자산이다. 이번 작품은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의 콘텐츠로 재탄생했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예술로 재해석되고, 다시 미래로 이어지는 이러한 작업의 과정은 지역사회와 문화단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지역학을 활용한 창작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지역 고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동해 용왕님이 사랑한 효녀”는 동해 대진마을 노고암의 바위 설화를 현대적 무대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지역의 이야기가 얼마나 보편적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증명했다.
시민예술가의 협업, 문화단체의 정체성
이번 작품은 강원민예총 동해지부가 문화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였다. 뮤지컬은 시민, 예술가, 단체가 함께 협력하며 만들어졌다. 효녀 월아를 연기한 가수 김난영, 용왕 역할의 테너 김창렬, 만석 역의 바리톤 김주창, 삼신할머니역 피아니스트 서별, 판소리로 극을 이끈 전지연, 가수 김정미와 김나해, 그리고 전문가 수준의 무용단과 마을 아낙네, 무대 뒤에서 연출과 안무를 도운 유지영, 원작을 남긴 이승철 박사, 총 예술감독의 유재민 강원민예총 동해지부장 등으로 구성된 40여 명의 모든 출연진은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수준 높은 연기를 펼쳤다. 이 과정은 지역의 인재들이 체계적 지원 속에서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문화단체는 단순 공연을 제작하는 조직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연결고리다. 예산 부족, 연습 장소 문제 등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이뤄낸 이번 성과는 단체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명확히 증명했다.
희망의 메시지,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
진행자로 참여한 필자는 공연을 마치며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글을 예로 들었다. 핵심은 ‘사람과 자연‘이다. 오늘 민중의 상상력과 자연이 빚어낸 바위설화 역시 주제어는 ‘사람과 자연‘이라고 했다. 시민이 일궈낸 뮤지컬을 본 뒤 8 자 어록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시민은 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말은 격려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다시금 확인한 선언이었다. 현재 지역 사회는 인재 부족을 걱정하지만, 실상은 인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심의 부족이며 발견되지 못한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이번 작품이 증명했다. 공연을 통해 드러난 협동심, 창의성, 끈기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 사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역 주민 주도로 만들어낸 이번 뮤지컬무대는 예술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잊고 있던 희망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희망은 가까이 있다, 지역문화의 힘
이번 뮤지컬은 희망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역문화 속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과거의 기록, 지역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하고, 이를 통해 공동체의 유대와 자긍심을 형성하는 과정이야말로 희망의 본질이다. 희망고갈 사회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금, 우리는 이 공연에서 배운 교훈을 지역 곳곳에 확산시켜야 한다. 지역문화는 과거를 보존하는 것보다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며 공동체의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자산이다.
지역에서 시작된 희망
“동해 용왕님이 사랑한 효녀”는 지역문화의 가치를 일깨우는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였다. 우리는 뮤지컬이 남긴 교훈을 통해 질문해야 한다. “우리 지역에서, 우리의 공동체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만들 수 있을까?” 답은 명확하다. 희망은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역문화는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은 희망을 만든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릴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글•사진•영상_ 조연섭
- 문화기획자, 음악전문 MC
- 스토리크리에이터
- 브런치스토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