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타인의 취향> 카스텔로의 취미를 통한 성장과 취미의 미학적 개별성
*미수정 (저장일 2018.05.06.)
Ⅰ. 엘리자베스-베레니스-로라를 거친 카스텔라
클라라, 오만과 편견이 가로막는 사랑
대체로 클라라는 카스텔라의 짝사랑 대상으로만 비춰진다. 그러나 그녀 역시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연극배우로서 자립하기엔 현실이 녹록치 않아 부업으로 영어 교사를 하고 있다. 별안간 그녀는 자신의 학생인 카스텔라의 사랑을 받게 되지만, 그녀의 눈에 그는 ‘돈 있는, 예술에 무지몽매한’ 사람일 뿐이었다. 카스텔로가 벽화 사업을 시행하게 된 이유는 그가 ‘안목’이 있어서가 아닌, 자신에 대한 호의 때문에 이용당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 고상한 예술적 안목, 즉 취미는 카스텔로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야말로 오만했던 것이고, 카스텔로에게 있어 편견을 가졌던 것이다. (물론 그녀의 경우는 예외였으나) 오만은 남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며, 편견은 남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클라라는 카스텔로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수많은 객석에서 그를 찾으려 애쓴다.
지친 베레니스에게 안녕을 고하며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것은 카스텔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술에 문외한이었던 그에게 연극은 지루하고, 조카의 출연을 축하해주기 위해 마지못해 끌려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눈꺼풀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이기고 연극에 몰입한다. 베레니스가 티투스와의 사랑을 포기하는 장면이었다. ‘연극’이라는 새로운 예술 취향을 알게 되면서 클라라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가 자신의 영어 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또 다른 사실을 마주한다. 그는 자신의 편견 때문에 썩 맘에 들지 않았던 영어교사 클라라를 ‘그제서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이 쉽지만은 않다. 클라라의 친구들에 끼어 들 때면 그는 꼭 놀림을 받으며, 그는 취향이라던가 예술적 안목이라곤 있어서는 안 될 사람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되지도 않는 영어를 쉬운 문장으로나마 구사하며 사랑 시를 써 본들, 클라라는 받아주지도 않는다. 클라라 취향에 맞추려 콧수염을 밀어도 정작 그녀는 알아주지도 않으며, 부인은 보기 싫다고까지 한다. 카스텔로의 타인을 위한 취향은 그야말로 실패로 끝나고 만다.
카스텔로와 클라라가 연을 잇게 된 연극에서, 베레니스는 이별 후 다시 돌아온 티투스를 받아주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떠나버린 사랑과 그렇게 만든 현실에 지쳤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복선처럼 보였던 연극의 내용과 달리, 카스텔로는 한참 뒤에야 찾아온 클라라에게 기꺼이 사랑으로 응답한다.
취향을 발견한 ‘인형’ 카스텔라, 집을 떠나다
비슷한 상황에서 베레니스와 달리, 카스텔로가 클라라를 기꺼이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자신의’ 취향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미 클라라를 사랑하면서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새로워졌다. 실패한 짝사랑에 망연자실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삶에 익숙해지려 했다. 이제 자신의 기호에 능동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오히려 클라라 앞에서 자신의 취향에 당당해졌다. 그녀로 인해 새로운 취향을 접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을 좋아하게 된 것은 자신의 선택이자 취향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입센의 [인형의 집]이 정말 웃기는 연극이야. 특히 로라가 집 나갈 때 얼마나 웃겨?”
자신을 놀리는 줄도 모르고 멋쩍게 자리만 차지하던 카스텔로는 그야말로 ‘로라’이자, ‘인형’이었다.
자신의 취향을 깨닫는 매 순간 순간마다 카스텔로는 다른 작품 속 주인공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클라라를 통해 연극이 취향이 되는 순간엔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에서 <베레니스>의 베레니스가 된다. 썩 달갑지 않았던 영어교사 클라라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자, 티투스를 사랑하는 베레니스가 된 것이다.
매몰차게 차이고 실패한 짝사랑과 자신의 취향을 매도하는 클라라와의 대화를 통해서는 슬픈 사실을 마주한다. 클라라와 남들에게 있어 자신은 취향이 없는, 혹은 예술을 모르는 ‘인형’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베레니스에서 <인형의 집>의 ‘인형’이었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카스텔로가 헌신한 어설픈 짝사랑 끝에 남은 것은 어둡게 침전하는 추상화, 즉 ‘자신의 취향’ 한 점임을 알게 된다. 마침내 ‘인형’에서 ‘로라’로 거듭나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Ⅱ. ‘취향’에 대하여
취미의 특수성과 보편성
취향이란 ‘하고 싶은 마음이 쏠리는 방향’을 의미한다. 유사한 개념의 철학 용어로는 취미(Geschmark, goût)가 있다. 근대 철학의 중요 개념 중 하나인 ‘실별 능력’으로서의 취미이다. 특히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에 이어 『판단력 비판』에서 취미판단의 가능성을 말한다.
칸트의 취미판단론은 (정말 아주) 쉽게 말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취미를 ‘차이’로 인식해야하는가에 대한 논의라고 볼 수 있다. 칸트는 미의 반성적 취미에 대해 ‘공통감Gemeinsinn’의 전제하에 그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정립했다. 단, 이 보편성은 형식적-기능적 요소에 대해서만 타당한 것이다.
심리학에서 취미는 선천적인 면과 경험적 결과로서의 취미로 나뉜다. 후자는 취미가 환경이나 교육의 영향 하에 일정 부분 길러짐으로써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취미는 개인이 삶을 영위하는 과정을 통해서 변할 수 있는 동시에 시대, 민족, 지역 등의 차이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이렇게 취미는 타인에 대한 특수성과 자신에 대한 보편성을 함께 가진다. 주관적 통일이 예술 작품에서 객관화된 것이 바로 양식이며, 칸트가 말하는 반성적 취미의 공통감이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성취하는 근거이다.
Chacun a son goût : 다양하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
너무나 자명하게도, 현실은 이론과 꼭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Chacun a son goût’ 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미적인 의미에서의 취미(趣味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는 힘)와 그 판단에는 무수한 다양성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각각의 취미’에 앞서 ‘각각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취향>은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라’는 교훈적 메시지 전달을 위해 각본을 쓰지는 않은 듯하다. 오히려 각각의 사람이 존재하며, 그들만의 취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고 삶이며, 그들 각자에겐 가치관임을 보여준다. 때론 타인을 반드시 인정할 필요성조차도 없어 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받아들이면 남편의 가출을 목도해야만 할 수도 있고, 연인을 떠나야 할 수도 있으며, 사직서 수리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삶이 꼭 비탄스러운 것인가? 이를 통해 새로운 눈으로 ‘다른’ 취향에 눈을 뜰 수도,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도 있다. 브루노가 보여주듯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개성이 있기에 멋진 오케스트라가 구성될 수 있다. 다양성의 존재야말로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전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