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분열과 '죄' - <<성경적 비판이론>> 4장을 읽고.
플라톤은 <국가론> 3권에서 '금속의 신화'라는 것을 소개한다. "신은 당신들을 만들 때, 당신들 중 통치자에 적합한 사람의 창조에는 금을 섞었기 때문에 그들은 가장 고귀하다. 그는 또 조력자가 될 사람에게는 은을, 그리고 농부와 그 밖의 숙련 노동자에게는 철과 동을 사용했다."(Plato, The Republic 415b, ed. G. R. F. Ferrari, trans. Tom Griffith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p. 108.)
유교는 비슷하게 사농공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정명론을 펼친다. 이것은 고상한 거짓말인데,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믿음으로써 도시와 서로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유익한 신화라고 하며 고상한 거짓말을 인정한다(같은 책 p. 108.). 사람들은 이제는 그런 계급이 나누어진 세상은 갔다고 말하고 실제로 그런 명시적인 계급은 사라진 것만 같지만, 동시에 속에서는 어떤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요컨대 요즘의 신화는 보다 교묘하게 노-력이나 수저론과 같이 자본주의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이데올로기의 모습으로 같은 고상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거짓말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기만하는 자와 기만당하는 자 사이를 갈라놓는다.
고상한 거짓말은 권력을 가진 1%에게는 진리일 수 있지만 나머지 99%에게는 편리한 비진리이다. 그 거짓말은 지배자가 살아가는 현실과 피지배자가 살아가는 현실을 서로 다르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것을 갈망하면서도 갈망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평소라면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는 물건도 마치 꼭 필요한 물건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에 익숙하다.
만약 우리에게 진실을 볼 용기가 있다면, 우리는 그 거짓말이 가리고 있는 진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우리 모두가 저질'이라는 사실에 있다. 화려한 옷을 입은 그나, 그저 그런 옷을 입은 나나, 우리 모두는 타락한 존재라는 점에서 동등해진다. 단테가 <<신곡>>에서 묘사하듯, "지옥에는 교황들이 있고 연옥에는 황제가 있다.(Rosenstock-Huessy, Out of Revolution, p. 508.)"
C. S. 루이스는 '죄'와 평등이나 민주주의의 탄생을 연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인간의 타락을 믿기 때문에 민주주의자이다. 나는 대부분 사람이 그 반대의 이유로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열정은 루소와 같은 사람들의 관념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는 인류가 너무 현명하고 선해서 모든 사람이 정부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믿었다. 그러한 근거에 기초에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 근거들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믿는 진짜 이유는 그 반대다. 인류는 너무 타락해서 어느 누구도 그의 동료 인간에게 견제되지 않은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신뢰해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람은 노예가 되는 게 딱 맞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반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주인이 되기에 적합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예제를 거부한다.(C. S. Lewis, "Equility", in Present Concerns, p. 7.)"
나는 C. S. 루이스의 말에서 한 가지도 뺄 말이 없다는 것,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 항상 놀랍다. 우리가 가장 노골적으로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고상한 거짓말의 예를 보고자 한다면, 백화점의 명품코너로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조심해라. 그곳에 합당한 예복을 갖추지 않고 달려갔다가는, 살 능력도 없으면서 구경온 자로 몰려서 눈앞에 있으나 없는 자 취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철저하게 구매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계급이 나누어진다. 백화점의 VVIP 라운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고상한 거짓말의 한복판으로 어느새 들어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얻어맞은 채, 자존심을 짓밟힌 채 돌아오기 십상이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자들은 조금 다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