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 될 수 있을까?
왜 성경적 사회 이론은 없는가? "우리는 '무엇?' 또는 '왜?'에 대해서는 배우지만 '그래서?'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배우지 못하고 있다."(42p)
위와 같은 이야기는 변호사업을 가진 나로서는 조금 더 와닿는 이야기인 것 같다. 변호사로서, 나는 의뢰인들이 법률적 혹은 '사실관계'에 관한 문제를 가져와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묻는 것에 대해서 적어도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정도의 대답을 항상 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게 옳은 것이 확실합니다'라고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각종 처분문서에 대한 해석을 나름대로 해내야 하고, 그래서 그 해석에 따르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반드시 결론을 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론을 법정이라는 '법적 진실'이 형성되는 공간에서 '참된 결론'이 되게 하기 위하여 매우 자주 싸워내야 한다.
그렇게 성경적으로 법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가 가장 필요한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떻게'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정치하게 들은 바가 별로 없고, 심지어는 '무엇?' 또는 '왜?'에 대한 질문도 거의 받지 못한 채로 살아온 것 같다. 법률에 관한 교육을 받을 때부터 소위 말하는 'Legal Mind'가 없어서 고생했는데, 사실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대체 'Mind'를 무엇을 기준으로 형성하라는 말인가?라는 식의 질문을 먼저 던지고 있느라 로스쿨이 원하는 '판례'와 '법리'에 기초한 결론 내기에는 더디게 다가갔기 때문도 한몫을 하였다고 본다(변명하자면).
책으로 돌아와보면 '형상(Figure)'이라는 개념을 문화의 다양한 측면이 서로 관련되는 방식을 설명하는 접근 방식으로 채택하고자 한다. '형상'이란 물질, 언어, 관념, 체계 또는 행동 등 창조 안에 있는 패턴과 리듬이다. 그리고 그러한 형상은 각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제도들이 형성하는 서로 다른 진리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 법원은 법적 진실을 생산하고, 실험실과 동료 학자들에 의한 심사 과정은 과학적 진실을 생산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형상은 주어진 문화에서 생산될 수 있는 진실들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한다. 그것은 하나의 관념이 진실로 인정되려면 따라야 하는 형태와 리듬과 같은 것들이다.
형상에는 여섯 개의 범주가 있다.
언어, 관념, 이야기
시간과 공간
실재의 구조
행동
관계
사물
각 범주의 형상들은 우리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형성하고, 그 감각을 표현하며, 사회가 변화하는 것처럼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이를 다 합하면 우리가 특정 문화적 순간의 '형상화 총량'(figuration totale)이라고 부르는 것이 형성된다.
위와 같은 형상의 언어를 통해 우리는 관념, 이야기, 행동, 제도, 시간, 공간 사이를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한 문화적 순간과 환경을 특징짓는 형상의 집합을 책에서는 단순히 '세계'라고 부른다. 이는 찰스 테일러가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y)이라고 부른 것, 즉 연관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현실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이 염두에 두고 궁리하는 지적 도식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어떤 것보다 조금 더 유연한 개념이다. 공감되는 은유적 표현을 따오자면, "그것은 어떤 장소의 지도가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내 집을 찾아갈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장소를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암묵적 파악이다"(57p).
세계는 다양한 형태의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느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세계는 부분적으로 우리 생물학의 한 기능이다. 다시 말해, 나의 세계는 내가 특정 파장의 빛만 볼 수 있고, 특정 음조만 들을 수 있으며, 다른 동물에 비해 후각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손에는 다른 손가락들을 마주 볼 수 있는 엄지손가락이 있고, 낮 동안에 활동하며, 지구상의 어떤 종보다 가장 발달된 뇌가 있다는 사실로 이루어진다(58p).
그리고 그러한 세계는 폴 뢰쾨르가 말한 텍스트의 세계와 독자의 세계가 만날 때 발생하는 현상과 유사한 방식으로 형상의 각 범주에서 매번 형상화된다.
전형상화(Prefiguration) - 독자인 내가 텍스트에 가져오는 세상이다. 세상이 어떤지, 사람들이 어떤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나의 감각이다.
형상화(Configuration) - 텍스트가 그 자체의 형상들을 가지고 내가 미리 예상한 기대와 가정을 두드려 맞추면서, 그것에 맞서거나 도전하거나 강화하는 방식이다.
재형상화(Refiguration) - 게오르그 가다머가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라고 부른 것. 텍스트와의 만남에서 떠나오면, 내가 텍스트에 간여하기 전에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세계 속에 들어가 살게 되는데, 때로는 약간만 다르기도 하지만 간혹 급진적 변혁을 경험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방식은 "삼중 미메시스모방, 재현, 유사성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threefold mimesis)라고 불리는 지속적인 변증법 또는 독자와 텍스트 사이의 대화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는 삶에서도 적용된다.
이 매거진에서는 <<성경적 비판이론>>을 읽고 든 생각과 책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내 안에 일어난 재형상화를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