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아지고 있는가? - <성경적 비판이론> 26장을 읽고
군대를 다녀오고 얼마 되지 않아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부 지도교수님과 지도학생들이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짧은 식사였지만 나는 그때 했던 대화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지도교수님은 학생들에게 한 질문을 던지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대답을 해보라고 하셨다. "지금의 세상이 이전에 비해서 진보하였다고 생각하나?" 나는 조금 고민을 하다가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교수님이 생각하신 답은 '그렇다'였던 것 같다(왜냐하면 '그렇다'라고 이야기한 학생의 이야기에 활짝 웃으시면서 동의를 하셨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세상이 진보했다는 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전 세계가 절대 빈곤의 수준에서 탈출하기 시작한 것이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 인권이 발전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분명 세상은 진보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만, 내가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한 것은 사람의 본성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현실과 끊임없는 전쟁이라는 현실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옳은 대답이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질문 자체가 잘못된 전제를 토대로 던저진 것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스스로를 시간의 기준으로 정의하고, 과거와 비교하며 미래를 예측한다. 현대라는 뜻의 'modern' 또한 라틴어 'modo', 즉 '바로 지금'에서 왔다. 현대인은 스스로를 "미신과 야만, 무지를 극복한 이들이며, 하늘이나 지옥을 바라보는 대신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이들"이라고 여긴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역사와 철학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근대인의 역사관을 지배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계몽주의의 점진적 진보라는 이상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을 통한 진보라는 이상이다.
계몽주의의 점진적 진보는 다른 말로 '보수적 진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사상은 인간과 그 세계는 기술 발전과 사회의 이성적 조직을 통해 시간이 갈수록 개선된다고 본다. 프롱스 경제학자인 A. J. R. 튀르고(Turgot)는 지금 보기에는 순진하고 듣기 거북한 말로 다음과 같이 계몽주의의 꿈을 말한다. "예의는 더 온화해지고, 인간의 지성은 계몽되며, 서로 다른 민족들은 더욱 가까워진다. 마침내 상업적, 정치적 유대가 전 세계를 잇게 되고, 인류 전체는 고요함과 동요, 번영과 고통이 교차하는 가운데, 비록 느릴지라도 더 큰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는 역사를 선형적으로 보는 관점으로서, 본래는 "유대-기독교 경전의 전통에서 기원한 경향"에 해당한다. 역사의 점진적인 발전과 찬란한 미래로의 종말은, 존 그레이(John Gray)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의 구원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기독교적 믿음의 돌연변이 형태"이다. 즉, 근대는 종말을 통제하고 정하는 주체를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 설정한 것이다. "역사를 진보시키는 주체는 이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 창의성, 덕성과 노동이 되었다."
진보의 서사는 매력적인 자기기만이다. 그리고 진보의 개념을 '기술적 진보'로만 국한시킨다면, 오늘날에도 그럴듯해 보일 수 있다. "게다가 이 서사는 우리의 자존심과 자기 중심성에 아첨하므로 인기도 떨어지지 않는다." 계몽주의의 "진보, 향상, 인간의 완전 가능성에 대한 신념"은 "하나님의 섭리를 향한 기독교 신앙의 탈종교화된 버전"이며, 그것은 종교 못지않은 고집으로 지켜지고 있다(Critchley, The Faith of the Faithless, p. 110.). 그러나 완성을 향하여 진보한다는 계몽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본다. 수많은 인간의 썩어 가는 시신과 함께 계몽주의의 이상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실제로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일종의 도덕적 아노미 현상이 온 것은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런 미래를 예견한 계몽주의자는 없었다. 진공 상태의 윤리, 역사관은 다시 선형적 역사관이 아닌 순환적 역사관이 대체하였다. "문명은 완성을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법칙이나 이유 없이 떠올랐다가 무너지는 것"이 되었고, "서구 역시 팽창 뒤의 경직, 생명 뒤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불가피한 쇠퇴를 겪고 있다는 비관주의적인 시간관이 대체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지금도 '개인주의'와 '인간 중심주의'의 연료를 받아 계몽주의는 계속 주창되곤 한다.
혁명을 통한 진보라는 이상은 항상 갑작스러운 격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마르크스주의의 경우에는 그것을 유물론적 정치 이야기 속에서 찾는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문화사와 역사를 둘로 나누는 사건이 된다. 그리고 마르크스 이후에도 이러한 개념은 계속해서 변형되고 차용되어 왔다. 즉 특정 '사건'을 계기로 역사가 둘로 나뉘며, 시간의 흐름은 끊어지고, 세상 안에 이미 존재하는 잠재력이 점진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방해하고 혼란에 빠트리게 함으로써 어떠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건'에 대하여 중요한 해석을 제시한 인물 중 하나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다. "그에게 있어 사건이란 단지 정치 혁명에 국한되지 않고, 과학적 발견, 예술적 혁신, 사랑의 관계까지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은 역사라는 부드러운 흐름을 중단시키고,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세상에 가져다준다고 그는 생각했다."
같은 프랑스 철학자인 장뤽 낭시는 이러한 '사건' 개념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그는 이런 사유들이 기독교에 빚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들을 "크리스마스 투사"(Christmas projections)라고 부른다. 낭시에 의하면 "크리스마스 투사는 모두 성육신이라는 형상에 기생하고 있다. 성육신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모든 것을 바꿔 버린 순전하고 단순한 기독교의 탄생' 그 자체다." 그는 "우리의 전통 자체는, 아무리 비기독교적이 되려 해도, 여전히 '크리스마스 투사'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 어떤 순간에 '그 일'이 일어나고, 그 이후 우리는 기독교적 조건 안에 놓이게 된다"라고 말한다. 존 그레이는 "혁명가들은 자신들이 종교를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형태로 종교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 기독교가 말하는 선형적인 역사와 종말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최후의 심판'을 믿기 때문에 지금 이 세상에서 사회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당위가 약화된다고 비판하곤 한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세상을 완전하게 하실 텐데, 지금 당장 우리가 뭘 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주의 날의 예언, 곧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알아서 일하시기를 기대하며 기다리라는 위로가 아니라, 시민권 운동에 무관심한 남부의 동료 성직자들을 향한 날카로운 책망이었다. 메럴드 웨스트팔은 이렇게 강조한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면서 동시에 지상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회 구조를 묵인하거나 수용한다면, 우리는 참된 진리를 거짓된 현실의 도구로 삼는 것이며, 우리의 신학은 이데올로기로 전락하는 것이다" 리처드 보컴은 "창조 세계 안에서 행해진 그 어떤 일도 마지막 날에 잊히거나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덧없는 선이라도 그 자체로 이룰 가치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내는 어떤 역사적 완성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점진적으로 진보한다는 패러다임, 즉 계몽주의의 점진적 진보와 혁명을 통한 진보는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각 패러다임은 "어떤 행위가 그 역사적 목표에 기여하는 한에서만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최후의 정의'에 대한 믿음만이 지금 이 순간의 사회적 실천을 위한 유일하게 일관되고 포괄적인 기반이다. "아무리 실패할 것처럼 보이는 대의라도,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한 시도는 여전히 할 가치가 있다"는 믿음은 진정으로 '새로운'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독교적 믿음 안에서만 가능한 주장이다.
권리와 자유의 역사에 있어서, '인권'이라는 개념의 발전에 있어서 기독교가 가지는 역사적, 형이상학적 의미를 생각해 보면,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신 '진보'라는 것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최후의 정의'에 빚지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 자신이 그런 '최후의 정의'를 토대로 '지연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는지를 반성할 수 있는 것 또한 '최후의 정의'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음에도, 그럼에도 '지연된 정의'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님처럼, 어떠한 작은 '선'이라도 궁극적인 심판으로 인해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에 어떤 '정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어느 순간 '선'과 '악'이 마구 뒤섞이는 것처럼 보이고, 역사는 순환하는 것들의 반복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역사의 한 순간을 살아갈 뿐인 우리가 그 수평선 너머의 세계를 다 담을 수 없는 인식론적 한계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도교수님께 "세계는 진보하지 않았다"라고 답한 것은 그런 한계만을 두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도 역사는 나아간다. 그러나 계몽된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점진적 변화'나 혁명적 '사건'처럼 선형적으로만 나아가지는 않는다. "안락한 점진주의-비록 불규칙하더라도 예측 가능한 개선의 흐름"과는 반대로, "상황은 더 나빠지고, 훨씬 더 나빠지고, 그 후에야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좋아지긴 한다. 아주 극적으로." 내가 동의하고 있는 역사관은 매우 '절제된 낙관주의'이다. J. R. R. 톨킨은 "나는 그리스도인이며, 로마 가톨릭 신자이기에, '역사'란 본질적으로 '긴 패배'일뿐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 안에 최후 승리의 단편들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히려 전설과 같은 류가 더 선명하고 감동적으로 승리를 말한다"라고 말한다. 전설은 현실이 담지 못하는, 그러나 반드시 도래하는 종말이 담은 소망을 드러낸다. 종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미래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현재를 의미짓는다. 현실을 환원적으로 단순화하지 않으면서도, '최후의 정의'가 가능함을 믿고 현재에 정의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어떤 '진보'의 가능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