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을 하고 있는가 여행을 하고 있는가?
내 수중엔 해외여행을 할 돈이 넉넉히 있지 않았다. 해외여행이란 숙박비를 아껴도 유럽 정도라면 수백만 원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상황이야 달랐겠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은 마치 유행을 타듯 장기 해외여행을 다녀오려고 기를 썼었고, 난 그들 곁에서 그들이 찍은 사진들을 보며 그들이 해외여행에서 무엇을 했는지 상상하곤 했다.
사실 그 사진 속의 많은 것들은 내가 이전에 책에서 본 것들이었다. 흔한 에펠타워, 흔한 개선문, 흔한 커피숍, 흔한 미술관의 전시물, 흔한 런던아이, 흔한 비행기 좌석. 내가 그렇게도 부러워했던 그 돈으로 여행을 했던 사람들이 본 것이 그랬다. 분명 책에 존재하는 것을 본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실제의 작품을 육안으로 보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 대가는 너무 컸다.
입장을 바꿔보자. 만약 내가 외국인이었고, 서울에 와서 경복궁을 들른 다음, 국립중앙박물관과 시립미술관을 거쳐 서울 타워에 올라 서울 구경을 잘 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바다를 건너왔다면 수백만 원어치에 달할 내 항공권과 숙박료는 정말 뜻있게 쓰여졌을까? 한국에 온 그들도 분명 비행기를 탔을 땐 흥분했을 것이고, 비행기에 내려서 새로운 곳을 탐방하면 자신도 모르는 신비감에 마음이 들떴을 것이다. 책에 있는 걸 보러 가고자 하는 열망보다는 새로운 곳에 발 디딘다는 호기심에 들떴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이었을까? 우리는 여행을 하고자 했지만 왜 관광에 종종 머무는가?
나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난 게 벌써 10년 전 일이 됐다.
첫 여행에서 가이드북에 '평생 기억에 남을 노을을 볼 수 있다'고 서술되어있는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랐다. 그리고 오랜만에 관광 엽서 같은 사진을 찍어봤다. 하지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노을의 시간은 짧았고, 내 사진 속 풍경은 멀어 보였다. 잘 하지도 못 하는 외국어에 특별할 것 없는 여행자인 나에게 유럽을 보는 일이 그랬다. 유럽을 탐방하기엔 몇 달 되지도 않는 시간은 마냥 짧았다. 신기루 같은 유럽의 고급스러운 풍경은 막상 내 시선으로 어루만지기엔 여전히 남의 풍경일 뿐이었다. 나에게도 진정한 여행은 여전히 먼 풍경이었다.
그 관광이 아닌 여행으로 이르기 위한 '여행'을 이곳에 정리하고자 한다. 나의 글자로 책에 쓰여지지 않은 세계에 대해 조금씩 채워가고자 한다. 그렇게 손에 잡힐 것 같던 기억하고 싶은 원경과 간직하고 싶은 근경을 조금이나마 채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