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 놀이터에서 놀 때 난 기차의 기적소리를 종종 듣곤 했다. 기차의 두 번째 기적소리를 들으면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기차의 기적소리 간격이 한 시간이어서 시계가 없이도 집에 갈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경춘선 간이역이 있는 한 서울 북부에서 태어났다.
내가 어릴 적 잠이 들 시간에는 나무가 무성한 간이역을 가로지르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뜨문뜨문 창을 통해 들리곤 했다. 그리고 기차가 일으킨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기적소리를 쫒아 창문을 두드렸다.
어느 눈이 온 새벽에 난 그 간이역을 찾아왔다. 나무도 역도 사라졌지만 기적소리만은 남아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며 내 옛 아주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려고 할 때쯤 기차가 기적소리와 함께 다가오더니, 기차가 끌고 온 작은 눈보라가 날 덮쳤다. 그리고 간신히 주섬주섬 기억해볼 수 있던 뭉그러진 기억도 기차와 함께 사라졌다.
Dec. 2006, E100VS,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