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알게 된 미국 친구는 Atlanta에 살던 한 여자였다.
10년 전 당시에 유행하던 네이트온에 대뜸 날 추가하더니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었다.
그는 영어를 잘 못 하는 한국인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지만,
그의 남자친구가 그리 친절한 사람도 아니고 설명할 역량도 없어서 날 찾은 모양이었다.
난 한국에 살고 있었고, 그를 실제로 본 건 몇 년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그는 꽤 재밌는 성격을 지닌 친구라 그와 나는 꽤 가깝게 소통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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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흘러 그와 잠시 멀어졌지만,
그를 만난 지 3년 만에 우연하게 Atlanta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고
실제로 그제야 그를 처음 만나 볼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좀 더 강인한 인물이었고,
그럭저럭 그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었다.
그의 고등학교 친구가 새로운 남자친구로 바뀌어 있었고,
셋이서 그럭저럭 기억에 많이 남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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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더 멀어졌고, 2년 뒤 다시 우연히 Atlanta를 들러 만났을 땐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의 남자친구도 그때의 모임에 참가했는데, 내가 알던 이전의 두 남자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성격에 기반하는 장애를 겪는 듯했고, 그의 얼굴도 마음도 읽기 어려웠다.
한때 그와 친했던 나로선 그 자리는 참 거북할 수밖에 없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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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더더욱 멀어졌고, 멀지 않아 박사과정 때문에 Atlanta로 이주했다.
나도 그 수많은 미국 도시 중 첫 미국 친구의 출신지인 Atlanta로 이주할 거란 생각을 못 했다.
이주 후 그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그는 연락하기 정말 어려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렵사리 2년 만에 다시 그를 만난 곳은 그가 초청한 한 게이바였다.
그는 퀴어가 되어있었고, 막나가는 청소년처럼 '질주'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그의 한참 어린 여자친구가 동행하고 있었고 그의 말투는 완전히 변해있었다.
그리고 내가 옛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과거를 꽤나 많이 잊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곤 정신없이 다른 여자들과 춤을 추며 그는 나에게 말했다.
"흥미롭지? 내가 동성애자가 되어있을지 몰랐지?"
*
그 이후 그와는 사실상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예상치 못하게 나는 당시의 학교를 떠나야 했고,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지 2년 만에 머나먼 서부로 이주했다.
그에게 Atlanta를 떠난다는 말을 남겼지만 그럼에도 그는 답장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다른 변화와 달리
그것만은 예상하지 못 한 그의 미래가 아니었다.
어른의 예상이란 대개 그런 맛이었다는 걸 나도 그때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