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겨울의 이야기다.
나는 그의 집에서 그가 해준 요리를 자주 먹곤 했다.
그의 요리 실력이 괜찮았고, 그 때문에 나는 후에 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하게 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요리하는 걸 지켜보면 섬찟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캔을 주방용 큰 칼로 찍어내리며 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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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많지 않던 그 시절,
그를 기다리다가 추워서 잠시 백화점에 들어가 마냥 둘러보다가 한 캔따개가 눈에 들어왔다.
선물로 주면 딱이겠다 싶은 그 캔따개는 생각보다 고급스러웠다.
그렇게 레버를 돌리면서 캔을 딸 수 있는 도구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캔따개가 뭐로 만들어졌는진 모르겠지만, 그 당시 가격으로 3만 원이 넘었다.
갑작스레 산 선물이기도 했지만,
돈을 벌지도 못 하는 입장이었던 학생 시절이라 내게 꽤 약간 부담스럽긴 했다.
하지만 그 돈이 그리 아깝지 않았다.
그는 그 선물을 받고 매우 좋아했다.
나는 내 사정에 비해 거금을 투자했다고 생각했다는 마음 때문인지
캔을 따면서 내 이름을 한번씩 생각하라고 당부했다.
캔따개 잘 있냐고 안부를 물었을 때가 있을 정도로
그가 해준 요리에 마냥 고마웠고 그가 다치지 않길 원했다.
그리고 그 캔따개를 그 이후로 그의 집에서 몇 번 더 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캔따개를 볼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
그 캔따개를 다시 본 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미국에 건너와서였다.
오래전 백화점에 고급스럽게 진열되어있던 그 캔따개는
정신없이 물건이 진열된 대형 슈퍼마트 한 켠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가격도 몇 천 원이면 살 수준이었다.
그게 뭐라고 그 예전 그렇게 많은 진심을 썼었냐고 비아냥을 잔뜩 하는 것 마냥
캔따개는 문구가 요란한 포장재료와 함께 묶여 있었다.
*
어쨌튼 나에게도 필요할 듯하여 그 캔따개를 집어들었다.
그러다 시간이 꽤 지나자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캔따개가 녹슬기 시작했다.
분해를 해서 닦아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시간 낭비일까 싶어 과감히 버렸다.
생각해보니 내가 예전에 선물로 준 캔따개도 그런 운명을 맞이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수명도 모르는 채,
기억의 잡화 상인이 되어 몇 천 원짜리 중고 기억을 파는 나도,
그 사실을 너무 오래 기억했나 싶다.
진심이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