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Catkr Oct 20. 2020

기억이 반복된다면

May 2019, E100VS, Tempe

중학생 땐 난 여드름이 많은 편이었다. 여드름은 보통 이마에서 생겨 점점 남하를 하는데, 무슨 한국 전쟁하듯 여드름과의 전선을 잡고 방어를 해야 했다. 얼마나 심했는지 피부과를 다닐 정도였고, 아직도 그때의 여드름 자국이 관자놀이 근처에 남아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쯤 되니 갑자기 여드름이 사라졌다. 그렇게 오래 동안 싸워온 여드름이 정말 마법 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즐거워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내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신체적으로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거라는 신호였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그때 키 성장이 멈췄고, 이후 그 키로 계속 살았다.


*

새벽에 혼자 앉아 서울에서 돌아다니면서 듣던 음악을 들으면 없던 향수병도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러면 아주 스치듯이 끊긴 몇 장면이 머릿속을 지나친다. 그렇게 장면을 기억하면 꼭 특정 시절로 돌아간다. 더 행복했던 날도 더 슬펐던 날도 아닌, 더 기억날만한 일이 많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박사 과정을 다니는 건 그래서 조금 불편하다. 늘어나는 추억이 많지 않아 항상 향수병 같은 회상은 먼 과거에 의존하고 그게 반복되는 걸 지켜봐야 한다.


*

언젠간 내가 자주 회상하는 시절이 바뀔 것 같다. 아마 내 여드름이 사라진 때의 일처럼 기쁘기도 하면서 한없이 아쉬울 것 같다. 그 강제된 학생으로서의 젊음이 끝났다는 사실이니.

매거진의 이전글 저지방 우유 같은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