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난 저지방 우유를 마셨다.
내가 사달라고 해서 마신 것은 아니었고, 집에 그것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분명 매일 작은 일반 우유를 먹었기에 원래의 우유가 무슨 맛인지 알고 있긴 했고,
처음 먹어본 저지방 우유는 내가 알던 우유의 맛이 나지 않아서 좀 이상했다.
물론 난 뚱뚱한 아이도 아니었다.
일생에 내 키에 맞는 평균 체중에 이르러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엄마가 나에게 저지방 우유를 줬는지는 모르지만
음식에 그다지 욕심이 없는 나는 투정하지 않았고,
엄마는 계속 나에게 저지방 우유를 줬다.
저지방 우유를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의 오랜 시간 동안 마시다 보니,
나중에 밖에서 어쩌다 일반 우유를 마실 기회가 생겨서 마셔보면
일반 우유가 너무 느끼하고 달콤해서 마시기 불편했다.
나에겐 저지방 우유도 충분히 달콤하고 마실만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맛이 내가 기억하는 예전 일반 우유의 맛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져서 사람들이 외출을 못 해 답답해할 때
나는 내 삶이 이전과 거의 같다는 걸 깨달았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내 삶은 저지방 우유 같은 삶이다.
노는 날도 별로 없고,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그런 삶이다.
처음부터 이런 삶을 살았던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진짜 우유를 먹었던 기억처럼
일반적인 삶이 무엇인지 나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나의 기록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해도 어떤 사람들은 그걸 잘 안 믿지만,
저지방 우유를 계속 마시면 일반 우유처럼 느껴지듯이
이렇게 사는 삶도 의외로 버틸만한 삶처럼 느껴진다.
*
나의 저지방 우유 같은 삶은 내 진로를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내 선택이었기에 나는 후회하지 않지만
언제까지 저지방 우유 같은 삶을 살 거냐고 나에게 자문을 할 때가 있다.
분명 언젠가 이런 삶은 끝날 것이고, 일반적 삶을 나도 아마 살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의 그런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 고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저지방 우유 같던 그 어느 시절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