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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Catkr Jul 04. 2021

디지털 사진과 필름 사진 비교의 잘못된 가정

블라인드 테스트는 정말로 믿을만한가?

필름 카메라가 유행을 탔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디지털 시대에 일어났던 첫 파장은 아마 로모였을 것이다 (주: 로모 유행은 거의 끝났다). 그 이후엔 지드래곤이 콘탁스 G2를 썼을 때였다. 갑자기 그 카메라 가격이 2배가 되었었다. 시간이 흘러 미러리스 카메라가 나올 즈음에 카메라 간 이종교배가 유행을 탔고, 올드 렌즈 가격이 뛰었다. 러시아산 카피 렌즈도 가격이 뛰었고, 덩달아 다시 필름 사진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필름 사진의 옹호론자들은 필름에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 디지털 사진의 옹호론자들은 반대로 필름 사진에 특별한 것이 없다 말한다. 이 논쟁은 꽤나 오래된 논쟁이며, 이제는 거의 감정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 사진 옹호론자들 중에는 필름 사진 옹호론자들이 필름이 왜 특별한지 모르는 체, 그저 필름의 느낌적 느낌만으로 거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며, 필름 사진 옹호론자들은 본인들의 경험을 토대로 필름의 장점을 서술한다.


다들 아는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필름의 장점]

- 감성적인 색감

- 생각보다는 저렴한 카메라 (라이카 제외)

- 기계적인 느낌이 강한 카메라의 모양

- 낮은 감가상각률


[필름의 단점]

- 컷당 높은 유지비

- 촬영 후 리뷰 불가능

- 동일한 이유로 높은 촬영 실패율

- 고감도 촬영의 어려움 

- 현상 및 스캔까지의 걸리는 시간이 김


이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있다. 필름의 장점으로 돌아가서 모든 걸 제쳐두고 필름의 장점 하나를 뽑으라면 색감을 뽑는 사람이 많다. 그 부분이 바로 디지털 사진 옹호론자들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비교를 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디지털 사진을 잘 다루는 사람들은 필름의 독특한 색은 색 커브의 균형이 잘 안 맞춰진 색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가아 필름의 색은 디지털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색은 일반인들은 거의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그렇다. 아래 몇 가지 예시를 살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IAGEt_IjMyA (이분께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z-2oKIBO8

https://www.youtube.com/watch?v=Pt7vu-UU_bo 


결론부터 말하면 디지털 옹호론자들의 말이 맞다. 이제 디지털 사진과 필름 사진이 거의 차이가 없게 보정이 가능하다. 필름을 쓴 지 한 20년 된 나도 정교하게 보정된 디지털 사진과 필름 사진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 정말 필름 사진만의 고유한 색은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일까? 생각 끝에 몇 가지 잘못된 점들을 찾아냈다. 




1. 레퍼런스의 존재 문제


블라인드 테스트를 위해 디지털 사진의 RAW 파일에서 변환을 거쳐 필름 사진처럼 만들어 내는 과정을 떠올려보자. 위와 같이 사진을 보정한다고 하면 어떤 일부터 처음 할까? 아마도 스캔된 필름 사진을 반대쪽 화면에 펼쳐놓고 그에 맞춰서 디지털 사진의 색을 맞춘다. 


다른 조건을 생각해보자. 만약에 필름 사진이 오른쪽에 없었다고 하자. 이제 당신 앞에는 디지털카메라에서 나온 RAW 파일만이 존재한다. 당신의 임무는 필름 사진처럼 그 사진의 색을 바꾸는 것이다. 


후자의 조건이 실제 취미사진가의 상황에 가깝다. 매번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필름 카메라로 한번 디지털 카메라로 한번 찍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진을 할 때 RAW 파일을 펼치면 필름 사진이라는 레퍼런스가 대부분 없기 때문에 색을 상상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흐리멍덩한 RAW 파일의 첫 화면을 보면, 기말고사용 빈 답안지를 막 받아 든 것처럼 머리가 멍해질 때가 있다. 


레퍼런스 없이 색을 만들다 보면 "괜찮은" 필름 사진의 색을 만드는 게 어렵다는 걸 안다. 요점은 "괜찮은"에 있다.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는 건 필름 사진의 색상이 오류로 인한 색상이라는 점이다. 의외로 현상이 잘된 필름은 색의 균형이 매력적이고 괜찮다. 그 색 프로파일을 만들기 위해 필름 회사들이 오랜 시간의 연구를 거듭해왔다. 거꾸로 말하면 디지털 사진을 단시간에 보정하면서 그 균형을 깨지 않고 필름 사진처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만약에 그게 쉬웠으면 후지 필름에 있는 필름 시뮬레이션하고 실제 필름의 결과가 거의 같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다. 

필름 사진은 생각보다 색 균형이 정말 잘 잡혀있다. E100VS로 촬영한 사진.


2.  노출 세팅 문제


포트라 같은 필름은 인기가 많다. 화사한 피부톤 때문에 웨딩에서 자주 쓰였던 명성이 어디 가질 않는다. 특히 살짝 노출을 올려 찍었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필름의 강점 중 하나는 이렇게 살짝 올려 찍었을 때 명부가 굉장히 부드럽다는 데 있다. 그래서 아예 네거티브 필름 촬영을 가르치는 과거의 교재들은 노출을 잘 모르면 살짝 노출 오버로 찍으라고 가르칠 정도다. 


현재의 디지털 카메라들이 가진 다이나믹레인지가 필름 그 이상이긴 하나, 디지털에 비해서 노출 오버 시 완전히 색을 잃지 않는 필름의 고유 특성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디지털의 경우 너무 오버를 많이 해서 찍거나 후보정으로 노출을 올리면 색이 아예 사라지거나 형광색에 가까워진다. 인정하건대 일반적인 노출 사진은 사실 필름과 (보정이 잘된) 디지털의 차이가 적다. 그러나 필름의 매력이 잘 나오게 찍는 사진은 여전히 차이가 조금 있다. 


억지로 하이라이트를 죽이지 않더라도 필름은 명부가 참 부드럽다. E100VS


3. 색온도 민감도

디지털 신호를 사진으로 변환할 때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프로필을 사용한다. RAW 파일을 변환하다 보면 그 프로필이라는 게 선형도 아니고 S자 비슷하게 생긴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실제로 우리가 눈으로 받아들이는 빛의 정보가 그렇게 처리된다. 단순히 빛만 그런 게 아니라 소리도 그런 식으로 처리된다. 우리 몸은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프로필을 Preset 같은 것들로 조정하기도 한다. 여러 복합적인 변수들로 그 과정이 결정되다 보니 완벽하게 필름처럼 RAW를 뽑는 게 쉽지가 않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은 색온도에 대한 민감도이다. 필름은 단 하나의 색온도 프로파일에 맞춰져 있다. 대부분은 주광 (6500K 정도)이며, 주광이 아닌 상황에서는 다소 다른 색감을 낸다. 이 색감이라는 게 실내에서는 녹색이나 파란색이 들기도 해서 과거 필름의 시대엔 필터를 끼고 촬영도 했었다. 


필름을 쓰다 보면 필름이 생각보다 색온도에 민감하다는 걸 발견한다. 그래서 일몰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정말 황홀한 색이 나오기도 한다.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물들은 대부분 주광 환경에서 아주 표준적인 촬영을 하기 때문에 그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억지로 채도를 올린다고 해서 이런 식의 사진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 E100VS


4. 슬라이드 필름과의 비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에 네거티브 필름을 썼다. 그래서 그런지 블라인드 테스트도 대부분 네거티브 필름과 비교해서 수행되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네거티브 필름 색을 정확히 내는 건 분명 가능하지만, "괜찮은" 슬라이드 필름색은 더더욱 내기 어렵다. 색이 진할수록 조금만 리터칭에서 무리를 하면 너무 손을 많이 된 색처럼 보인다. 이건 마치 성형수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좋다. 슬라이드 사진은 기본적으로 센 색감을 가지고 있고, 명암대비가 자연스러우면서도 크다. 그래서 잘 찍은 슬라이드 사진처럼 보이기 위해 디지털 사진을 너무 많이 건드리면 인조인간처럼 보이고, 그렇다고 안 건드리면 밍밍한 사람처럼 보일수도 있다. 아래 National Geography의 전설적인 사진가 Steve Mccurry가 남긴 필름, 디지털 사진 각각 한 장을 보자. 그는 코닥 슬라이드를 가장 잘 이해한 사람 중 하나였고, 지금은 디지털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은 그의 남아시아 사진집의 커버를 장식했던 필름사진이다.
이 사진은 그가 2018년에 새롭게 디지털로 찍은 사진이다.


마무리


필름을 쓰는 이유엔 여러가지가 있다. 컷 수가 적어서 일수도 있고, 필름 카메라 자체가 좋아서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결과물에 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필름과 디지털은 같은 매체일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그 둘이 완전히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 특색 없이 찍힌 필름 사진은 디지털 사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나오는 코닥 E100 같은 필름은 보정을 대놓고 하라고 특색이 거의 잘 안 보이기도 한다. 종합적으로 보면 필름처럼 디지털 사진을 편집하는 건 가능하지만, 안정적으로 매번 그렇게 사진 보정을 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 특히 컷 수가 많을수록 그 불편함이 커진다. 또 필름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나오는 사진들이 있으며, 이를 디지털로 모방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거꾸로 말하면 필름을 쓴다는 건, 수많은 실험을 거쳐 필름 개발자가 고민한 색 프로필을 그대로 쓰는 것이며 그 색을 좋아하고 잘 쓸 수 있는 한에서 정말 좋은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술"이 그렇게 배우기 어려운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의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사진들은 1990년대 일반인들 찍던 사진들보다 훨씬 나은 사진들이다. 게다가 사진을 원체 많이 보았던 세대라 사진 보는 눈까지 올라가 있다. 


필름 사진 같은 사진이 좋다면 정말 필름을 써보자. 여러분은 이미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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