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의 환승역

나의 희미한 바늘구멍들

by 박태초


학교까지 가는 길은 편도 40분.

왕복 1시간 30분 정도이다.


그 길 중간에는 단 한 번,
집으로 도망칠 수 있는 환승 기회가 있었다.


그 역에서 내리지 못하면
나는
지옥 같은 학교로
그대로 실려 가야 했다.


매일 아침 등굣길마다 환승역에 다가 올쯤이면
나는 수백 번도 넘게
‘내릴까, 말까’를 고민했다.


타이밍을 놓치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학교로 향했고,

결론이 서는 날에는
환승역에서
가차 없이 내려 버렸다.


그렇게 가차 없이 내린 날에는

역 정류장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폭풍 전야 같은 고요함이 찾아오고,

내가 등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담임을 통해 엄마에게 전해짐과
다시 엄마의 전화가 나에게 걸려오기까지

약 30분.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유예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의 전화를 피하지 않았다.

집안 사정이 뻔한데도
내 고집으로 전학까지 시켜 주었는데

바뀐 것 하나 없이
다시 무너져 내린 내 모습이
너무 죄송했기 때문이다.

출근해야 하는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열다섯짜리의
마지막 미안함이었다.


“어디야?”


엄마는 내가 정류장에 있다는 걸
이미 다 알면서도
늘 다정하게 물었다.


그리고 화 한 번 내지 않고
이렇게 덧붙였다.


“엄마 출근하니까
얼른 집 가서 쉬고 있어.”



환승역에서 내릴 때마다 항상 하는 생각이었던..

‘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눈앞이 캄캄해질 때마다
들려오던 그 목소리는

나의
희미한 바늘구멍이 되어 주었다.
내가 결코 무시하지 않고 지나치지 않을 만큼
작지만 분명하게 빛나 주었기에

나는 그 빛을 따라
다시 한번
버텨 보기로 했다.


엉망진창이 된 내 삶에서
남은 마지막 자존심
단 하나였다.


엄마에게
졸업장을 선물하는 것.


열다섯의 나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를 구해 준 것은 아니었지만
도망칠 수 있는
아주 작은 구멍 하나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 구멍은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우연일 수도 있다.

정말 어쩌면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엄마의 목소리와 사촌언니의 현실적인 위로가
그 바늘구멍이었다.


그래서 나는
열다섯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야 산다’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도 있다’는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다.

그렇게 나는 겨우 숨을 붙잡은 채
다음 해로 넘어갔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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