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처럼 가벼운 사과

제도는 나의 바늘구멍이 아니었다

by 박태초


내가 수렁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엄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직후
엄마는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엄마와 내가 기대했던
드라마 같은 구원은 없었다.


학교라는 거대한 제도
나를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교무실로 불려 갔을 때
그곳의 공기는 차가웠다.


선생님의 눈빛은
어딘가 피로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신기하게도 단번에 깨달았다.

나를 지켜줄 울타리가 혹여 있다 해도
그 바늘구멍 같은 희망은 내가 서 있는 이곳.

학교라는 제도는 분명하게 아닐 거라는 것을.


집에 돌아와
나는 애꿎은 엄마에게 화를 냈다.


“왜 담임한테 전화했어.
도움 될 거였으면
수련회 때 이미 말했을 거야.”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울분은 학교라는 제도에 토해야 했었는데..



30대인 지금 시점에서 엄마한테 다시 물어봤다.


"그때 엄마도 화가 났었을 텐데 어떻게 참았어?"


엄마의 대답을

지금 30대에 와서 들으니

또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당시에 엄마 역시
차가운 교무실의 공기에
분명 화가 났고,

하지만 그 분노를
다 쏟아낼 수는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싸울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떠올린 것이 있었는데,

내가 그다음 날에
혼자 그 교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과 분노 표출 이후의 상황들에서

엄마는 이미 나의 외로움을 봐버렸다고 했다.

당시의 나는
내 감정을 버티는 것에만 급급했기에
엄마의 그 절제된 분노 뒤에 숨겨진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마음을 깨닫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다른 말 따위는 필요 없이 너무 고맙습니다 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찌어찌하여 형식적인 절차가 진행됐고
가해 아이들의 사과가 전해졌다.


하지만
그 사과에는 진심이 없었다.


억지로 끌려 나온 아이들이
한 명씩, 순서대로
형식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 말들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보다도 가벼웠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내 자신이 너무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 당시 내가 울면서 일기장에 끄적인 말 중에

딱 저 사춘기 시절

친구가 인생의 전부인 거 같을 때 드는 생각

약간의 순수한 믿음 같은 게 존재하긴 했었다.



'나는 그저
너희와 웃고 떠드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내가 더 잘해 주고
더 호의를 보이면
너희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망상이었던 걸까.

아니면
너희에게는 불편했을까.

혹은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착각하게 되는 걸까


그렇지만 그래도 한때는

너희도 진심이 있었겠지? 아니 있었기를..

이 진심을 바라는 건 나의 바램인가'



하지만 이변은 당연히 없었고

어느 쪽이든
결론은 하나였다.

나에게는
끝까지 회의감만 남았다는 것.


순수한 바램의 무게가

너무나도 가벼웠다는 것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마주했고,
실제로 당시에
그 앞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나는 겨우 참았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세상도
학교도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만
다시 확인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지독한 고립 속에서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제도는 나를 구해 주지 못하지만
뒤에서라도 희미한 내 옷 끝자락이라도 붙잡아 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완전히 혼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무렵
사촌언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 그거 알아?
다 돌아온다는 거.


살다 보면
걔네도 한 번쯤은
너처럼 괴로운 날을 겪을 거야.


그때 너를 떠올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힘든 건 분명할 거야.


근데 너는 그걸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겪은 것뿐이야.”


사과는 있었지만
진심은 없었고,
그 차가운 진실을 삼키며
나는 그 속에서
작은 바늘구멍 같은 틈을 발견했다.


사촌언니의 말을 들은 후에

갑자기 드라마 같은 변화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의 먼지 같은 사과보다는
훨씬 무겁고 진짜처럼 느껴졌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월, 금 연재
이전 09화제도는 나의 바늘구멍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