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나의 바늘구멍이 아니었다

수련회 그 이후

by 박태초


수련회에서 돌아온 후
나는 며칠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하루 이틀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이 지옥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어린 나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현관문을 나서는 것 자체가
거대한 벽 앞에 서는 것처럼 막막했다.


엄마는 이미 눈치로 짐작하고 있었지만
내가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참다못해
수련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세상이 떠나가라 놀라며
당장 학교로 쫓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담담했고,
그 고요한 반응 앞에서
나는 오히려 더 무너졌다.


‘역시 나만 예민한 애인 건가.’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채찍질했다.


내가 느낀 고통이
엄마에게조차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며칠 뒤
나는 결국 다시 학교로 나갔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수백 명의 시선이 모이는 급식실에서
혼자 식판을 들고 앉는 일은
사형대에 오르는 기분과 다르지 않기에
당연히 점심은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길게 느껴지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오면
아이들의 조리돌림은
갈수록 더 교묘하고 잔인해졌다.


없던 일도 만들어냈고
그 이야기들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져 나갔다.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려고 하면
어김없이 이런 말이 날아왔다.


“쟤랑 왜 놀아?”


그 말은
나를 향한 공격이 아니었다.


내가 말을 건
그 사람을 향한 경고였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말을 걸 수 없었다.


내가 말을 거는 순간
그 사람까지
표적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련회는 끝났지만
지옥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시작은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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