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영화 같았던 2박 3일의 끝

도망은 답이 아니었다.

by 박태초


아침 기상 알람이 울린 후.

나는 다시 한번 안경을 찾았지만
방 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안경을 벗은 얼굴이 창피했다.
그래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러던 중
내 안경은 남자 숙소에서 발견되었다.

나를 비웃던 여자아이들은
내가 전날 밤 남자아이들과 놀기 위해
남자 숙소에 놀러 갔고
관심을 받기 위해서

안경도 직접 가져다 놓은 것이라며
나를 다시 한번 몰아세웠다.

악을 마주한 나의 해탈이었을까.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떠오른 말이 아직도 또렷하다.

‘와… 정말 지겹다.
지긋지긋하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나중에 한 남자아이가

안경을 가져다 놓은 범인을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그랬는지는
이미 전날 밤
눈치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 여자아이들에게 필요했던 건

'안경' 그 자체가 아니라

짓밟을 새로운 이유
그 자체가 필요했던 거니까.

삼류 영화 극본 같았던
2박 3일의 수련회.

나도 모르는 내 남자 주인공들과
수많은 조연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서브 여주인공까지 등장한 이야기.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자 주인공에게 백마 탄 왕자님은 없었고
비련 한 주인공만 남은
‘몰래카메라’였다.

그 이후로
수련회와 수학여행은
나에게 늘 두려움이 되었다.

아직 제대로 끈적한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이었는데

나는 벌써
다음 주 등교가 두려웠다.

그 시절 열다섯의 나는
세상이 나 하나 없어도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갈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살아야겠다는 의지도
잘 살아야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내가 사라지면
오히려 모두가 더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야말로
완벽한 빵점짜리 오답이었다.
이기적이고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는 그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바늘구멍 만한 출구를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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